군산 성흥사 주지 송월(松月) 스님은 ‘태극권 포교사’다. 태극권을 배워서 자신의 건강을 돌볼 뿐 아니라 신도들도 지도하고 주민자치센터나 교도소 그리고 군부대에도 열심히 태극권을 전하고 다니기 때문에 내가 붙여준 이름이다.
1970년대 말, 송월 스님이 아직 출가하기 전의 일이다. 세상 넓은 줄 모르고 사업가의 야망을 펼치고 있을 때인데 갑자기 몸에 이상이 왔다. 얼굴에 시커먼 것들이 피어오르고 옆구리가 따끔거리더니 몹시 아팠다. 입원을 해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니 간경변이었다. 치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여러 달이 지나도록 차도가 없고 오히려 심해졌다. 주변에서도 걱정이 커졌는데 의사도 영 자신없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매달렸는데 어느 날은 도저히 어렵겠다고 해서 낙심천만하였다. 결국 병원생활을 청산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집에 왔는데 친지들이 백방으로 나서서 용하다는 의원과 무당까지 불렀다.
그런데 어느 무속인이 와서 “당신은 부처님이 하지 말라는 일들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이 망가져버린 것이니 정성을 다해서 부처님께 기도하면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소개로 진안에 있는 마이산에 가서 천일기도를 하였다. 그저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기도했다. 오로지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는 죽으리니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끝까지 해 보리라”는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또 부르며 무릎에 피멍이 들어도 아픈 줄 모르고 절을 했다. 엉덩이가 다 무르고 닳아질 때까지 밖에 나가지 않고 천일기도를 거의 다 마칠 무렵, 어느 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지경인데 커다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마에 젓가락같이 긴 침을 놓아준 뒤로 몸이 가뿐해짐을 느꼈다. 수없이 감사의 기도를 올렸음은 물론이다.
어느날 스님이 찾아왔다. 그 스님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열심히는 하지만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분은 전라북도 불교의 큰 어른으로 통하는 춘명(春明) 스님의 맏상좌 성공(性空) 스님이었다. 그날부터 그 분의 지도를 받고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고 공양올리는 의식을 배웠다.
그렇게 일년이 지난 뒤 사미계를 받았다. 무릎을 꿇고 참회진언을 외면서 연비를 할 때 뜻 모를 울음이 한정 없이 흘러나왔다. 계 설하기를 마치고 난 스님이 어깨를 두드리면서 “이제 너의 이름이 법원(法圓)이니 이 쪽에도 저 쪽에도 두루 통하는 삶을 살도록 해라.” 그날은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저녁에 자리에 누워 생각해 보니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다 말고 스님을 찾아가서 여쭸다. 은사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앞으로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렇게 지체 말고 묻도록 해라.” 하면서 다른 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둥글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법원’은 법명이고 ‘송월’은 법호다.
송월 스님은 그로부터 누가 뭐라고 하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건강을 되찾고 스승님의 은혜를 받아 부처님법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보니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살았는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다시는 자신과 같이 뭘 모르고 헤매는 이들이 없도록 하기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인쇄해서 일반인들에게 법보시를 많이 하기로 서원을 세웠다.
처음에는 불교서적 중에서 가벼운 분량의 쉬운 책을 돈이 되는대로 구해서 군산시내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런데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은 불교책을 잘 받으려 하지 않았고, 심한 경우는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처박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어린 시절에 불교 기초교육을 시키고 그들이 자라서도 바른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린이법회와 불교교양대학을 시작했다.
그렇게 성흥사를 군산시내 제일가는 전법도량으로 가꿔가고 있다. 또 새로운 포교방편으로 태극권을 배워서 사범의 자격을 가지고 적극 지도하고 있다. 사찰에서뿐 아니라 주민자치센터나 군부대, 교도소 가릴 것 없이 포교에 힘쓰고 있다. 스님도 나처럼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절감하고 있기에 서로 잘 통한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전화라도 걸어서 칭찬할라치면 그는 말한다.
“내가 제대로 하는 것이 뭐 있간디? 그냥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것 방향 잡아서 일러주고 같이 하는 것 뿐이제.” 전라북도 사투리와 미소띤 모습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스님이 바로 송월 스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