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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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원각경의 수행방편/유마선원장
<금강경>이나 <천수경>같은 경전에 비해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예로부터 수행인들에게는 필수 과목이 될 만큼 불교 수행의 요체를 설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경전이 <원각경>입니다. 본래의 제목이 <대방광 원각 수다라 요의경>이라 불리는 이 경은 열두 보살이 차례로 등장하여 부처님과의 문답을 통해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크나큰 깨달음 즉 대원각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수보살장으로 문수보살은 부처님께 불도 성취는 무엇으로 가능했는가를 묻습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여래의 불도 성취는 청정한 원각의 비춤으로 무명을 영원히 끊었기 때문이라고 답하시면서, 중생들이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는 것이 바로 무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무명의 본성은 실로 허깨비와 같아 본래 있는 것이 아님을 설합니다.
두 번째는 보현보살장으로 앞장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에 보현보살은 무명이 허깨비와 같다면 몸과 마음도 허깨비 같을 진대 어떻게 허깨비로써 허깨비를 여읠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허깨비 같은 무명은 역시 허깨비 같은 수행 방편으로 없앨 수 있으며 모든 허깨비는 사라지더라도 허깨비를 허깨비라고 깨달은 그 마음 즉 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울러 수행이란 다름아닌 무명과 더불어 일체를 허깨비와 같다고 여기고 떠나는 공부인데 허깨비를 떠나되 떠났다는 것 마저 떠나고 또 다시 떠났다는 것마저도 계속해서 떠나 더 이상 떠날 게 없어야 비로소 원각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원각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보안보살장으로 모든 허깨비를 여의려면 어떻게 수행하고 머물고 어떤 방편을 써야 되는지에 관해 설합니다. 원각을 구하려면 계율을 굳게 지니고 고요한 방에 앉아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짓는데 몸은 사대의 조화로 이루어져 나라 할만한 실체가 없고 마음도 육진의 인연으로 나타난 그림자와 같아 내가 없음을 관찰해 갈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부하면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것을 알게 되고 허깨비 같은 일체의 존재 그대로가 법계에 두루 하고, 움직임 없는 청정 원각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네 번째 장은 금강장보살장으로 본래 부처였던 중생에게 왜 무명이 있게 되었는가, 무명이 본래 있는 것이라면 중생을 부처라고 하지 말아야 되지 않은가, 그리고 부처도 나중에 다시 중생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등에 대한 금강장보살의 질문에, 부처님은 우선 윤회하는 마음으로 부처의 원각을 알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경책합니다.
그리고 금광의 비유를 들어 금은 본래 금이라 광석을 제련해서 생기지 않듯 중생이 본래 부처이나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치를 설명하고, 광석 속의 금이 순금으로 제련 되면 다시는 광석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이치를 깨달으면 다시는 무명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설합니다. (계속)
200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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