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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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복권으로 인생 역전되나요?
결국 우리 동네, 그 나지막하고 아담하던 우리 동네에도 복권방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엊그제 버스 정류장에 나갔더니 그 앞에도 한 곳 생겼더군요. 가게 유리에는 지난 주 당첨번호와 이번 주 1등 당첨금이 24시간 반짝거리며 오가는 이들을 유혹합니다.
사실 그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저는 1등에 당첨되면 내 삶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갈까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더 고급동네에 살고 더 비싼 옷을 입고 훨씬 넓은 평수의 집에서 살아가겠지만 그게 내 인생에 어떤 ‘질 높은 변화’를 줄지 밑그림조차 그려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 아난 존자와 함께 넓은 들판을 지나시다가 어느 밭두둑에 엄청난 황금덩어리가 숨겨져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아난아, 이게 바로 무시무시한 독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렇습니다. 독사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독사입니다.”
때마침 그 밭에서 일하던 농부가 부처님과 아난이 ‘독사, 독사’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대체 무슨 독사가 있는데 저리들 난리람?’
농부는 확인하러 그곳에 갔더니 독사가 있다고 하던 그 자리에는 황금빛 찬란한 금덩어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농부의 눈이 뒤집혔지요.
“세상에나…. 이 좋은 걸 독사라고 하다니….”
농부는 부리나케 황금덩어리를 주워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간 사는 게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가난에 찌들어 입고 싶은 옷 한번 제대로 못 해 입었고 먹고 싶은 음식은 그저 상상 속에서나 떠올렸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고 보니 이제 입성이며 먹을거리는 여느 부잣집 못지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살림살이가 확 편 것을 못내 수상쩍게 여기고 있던 관리가 급기야 그를 끌고 갔습니다. 농부는 사실대로 말하였습니다.
임자 없는 보물이라 생각해서 가져간 것이라며 절대로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다고 결백을 호소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통할 리 없지요. 오히려 거짓말을 한다며 죄는 더욱 무거워졌고 결국 농부는 황금덩어리를 고스란히 빼앗기고도 사형대로 끌려갈 지경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감옥에 갇혀 하루하루 불안하고 억울한 나날을 보내던 농부는 황금을 처음 발견했던 그 날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아난이시여, 정말로 독사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진짜 흉악한 독사였습니다.”
이런 외침은 왕에게까지 전해졌고 왕에게 불려간 농부는 그 사연을 고하였습니다.
“제가 예전에 그 밭에서 일을 하다가 부처님과 아난이 ‘독사다, 흉악한 독사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때는 몰랐었지만 이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처님이 얼마나 훌륭한 가르침을 주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독사에 물리면 일가친척이 모두 고통을 당하듯이 재물도 독사의 해악과도 똑같아서 그 피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큰 재물을 보고도 유혹을 당하였겠습니까?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대장엄론경’ 6권)
그럼, 가난한 사람은 큰 돈도 만지지 말라는 법이냐며 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은 재가불자들에게 경제적 여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강조하여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 황금덩어리를 독사라고 하신 이유는 바로 이렇게 요행으로 거머쥔 큰 재산이 얼마나 그 사람을 망치는지를 일러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사실 복권을 사는 사람은 ‘그건 요행이 아니다. 며칠 지나면 물거품이 되어버릴 게 뻔하지만 추첨하기 직전까지 맘껏 꿈꿀 수 있으니 그게 얼마나 좋으냐’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심 이 한 장으로 인생이 역전하리라는 어마어마한 한탕심리가 깔려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천 원 어치 복권을 사서 천 원짜리에 당첨되면 다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이게 뭐야? 아, 이런! 돈만 버렸네!”
적어도 복권에 있어서는 본전치기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 수백, 수천 배의 이득은 챙겨야 본전을 건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게 바로 복권입니다.
노력한 만큼 갖게 되는 정당한 부 보다는 일확천금을 부추기는 사회풍조도 문제입니다. 자기가 이미 소유한 권리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이들로 바글거리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인생이 역전된다 한들 좋은 방향으로 역전되겠습니까? 큰 재물을 바라기 전에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욕심과 기득권을 한 숟가락씩이라도 덜어내는 일, 이것만이 맹독 품은 독사를 죽여 버리고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200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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