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헌법재판에서 위헌 판정을 받았다. 이 결정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사후처리의 짐과 향후의 과제를 던져주면서 여러 측면에서 만만찮은 파문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의 ‘누구도 그 법적 효력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다양한 의견과 평가가 있을 것’이라는 언급에서도 그 전조를 감지할 수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정치판에서의 여야 대결은 상생보다는 사생결단으로, 국익보다는 당리당략의 싸움으로 일관하는 것이 일종의 관성이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이러한 충돌과 대결 양상이 여야라는 정당적 수준에 머물지 않고 전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대되어 과거와는 그 양상이 확연히 달라진 하나의 정형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는 집권층이 안정을 선호하고, 야당은 변화를 요구하였지만, 오늘날은 대통령과 여당은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야당은 그것을 거부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집권 여당과 대체로 동일한 상황인식을 갖는 국민들과 공무원, 법관, 교수단체, 시민단체, 언론매체들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고 있다. 또한 여당의 변화시도 예컨대 행정수도의 이전, 보안법 폐지, 과거사청산 등을 가능한 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대항 세트를 형성하여 총체적인 대결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하여 끝없는 저주의 언사를 퍼붓고 있다.
이러한 형국에서 법리적 타당성도 그렇게 분명하지 못하고, 논리적 설득력도 충분치 못한 관습헌법이라는 용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경국대전까지 동원하는 기발함은 결국 대항 세트측의 손을 덜어 주기 위한 묘수로 보이며, 재판관 자신들의 이념적 성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헌재는 기득권의 관성체계를 유지시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었고, 그 대가로 그들은 국가의지의 최종적인 결정을 시정의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성매매와 호주제도 관습이라는 준거를 들이대면서 그 헌법적 정당성을 주장할 준비를 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무리한 법 해석에 저항하는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흐름이 형성될 것이라는 조짐을 대중적 지지도와 명성을 가진 어느 철학자가 그들에게 붙여준 ‘갑신칠적’이라는 딱지에서 읽을 수 있다.
나는 헌재의 이번 결정이 지키고 유지되어야 할만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것인지 아니면 박제된 관습이 산 사람의 미래를 망치는 불행한 결정인지를 가리려하지 않는다. 또한 이미 ‘관습헌법‘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전문가들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는 법리논쟁에 한가지 의견을 더하려고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일차적인 책임은 안이하게 대처하여 정부정책을 따른 국민들의 희망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한 집권여당과 노대통령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하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인식과 시대정신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현실인식은 새로운 사회적 요구를 체감하지 못하는 수준이고, 그들의 시대정신은 조선시대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스스로 만천하에 천명하였다. 역동적 변화의 세기인 지식정보 사회에서 농경적 현실인식과 전근대적 시대정신의 소유자들에게 국가의사결정의 마지막 과정을 맡기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마냥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란 무상(변화) 연속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이고, 사회는 변화의 현장이며, 변화에 예외가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야 그들이 깨달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