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곡(禪谷) 스님은 1898년 태어나 1968년 입적했다. 육조 혜능 대사처럼, 머리 깎은 스님이 되기 전에 깨달음을 얻은 기연을 가졌던 스님이다. 선곡은 자호(自號)이고 법명은 도윤(道允), 법호는 설곡(雪谷)이다. 열일곱에 송광사에 들어가 공양주를 보면서 행자생활을 삼년이나 했다.
요즘엔 행자 생활을 해도 머리를 깎고 하지만 그 시절에는 머리를 그대로 두고 속복을 입은 채로 했다. 세월이 한참 가서 절에 익숙해질 무렵에야 머리를 깎이고 먹물 옷을 입을 수 있게 했다.
어느 날 선곡은 점심을 먹은 뒤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삼일암(三日庵)에 들어가게 되었다. 삼일암은 나중에 효봉·구산·법정·보성 스님 등 쟁쟁한 선사들이 주석하면서 수좌들과 일반인에게 낯익은 암자가 되었다. 암자에 들어가 이리저리 살피다가 병풍을 하나 보았는데 무슨 소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이 이상하게 눈에 들어와서 떨쳐지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불교를 조금만 알아도 십우도니 심우도(尋牛圖)니 하고 알아보았을 텐데 당시에는 아는 이가 드물었다.
선곡은 이상하게도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느꼈다. 선곡은 무릎을 치면서 “그렇지! 헐어진 외양간을 뛰쳐 나온 소! 그 소를 나도 꼭 찾아야지!” 의지를 곧추 세웠다. 삼일암을 내려온 선곡은 송광사 원주스님에게 하직 인사를 드리고 괴나리 봇짐을 싸서 조계산을 올랐다.
언젠가 스님들이 한담을 하면서 이야기한, 참선하는 수좌가 살고 있다는 비로암(毘盧庵)으로 갔다. 비로암은 송광사의 뒷산을 넘어서 비탈 양지바른 곳에 있었다. 선암사 산내 암자로서 처음 아도화상이 이곳에 도량을 열었다고 한다. 비로암에는 당시 두 세 명의 수행자가 또아리 치듯이 좌선만 하고 있었는데 선곡도 아침저녁으로 밥을 해주면서 참선을 같이 했다. 생각해보면 머리를 빡빡 깎은 스님들 틈에 봉두난발한 속인이 같이 있는 것이 이상했을 텐데 아무도 그런 생각이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수행을 했다.
지금도 비로암은 아주 작은 암자로 승려들이 편하게 있을 곳이 못되는데 당시에는 더 형편없었다. 그렇게 있다가 다른 스님들은 다 나가고 선곡 혼자서 10여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좌선하던 다리를 풀고 경행이나 할까 하고 문을 열고 나오다 조계산 능선에 아침볕이 내리쬐는 모습을 보고 홀연히 깨달았다.
게송을 읊어대고 꽃이나 새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고는 이상하게 생각해 산 아래 선암사로 전했다. 당시 선암사 본절에는 뒷날 4대 강백(講伯)중 한 명이라 일컬어지던 경붕(景鵬)스님이 칠전선원 조실로 있었다.
선암사 출신 대강백은 함명(涵溟), 경붕(景鵬), 경운(驚雲), 금봉(錦峯), 네 스님이다. 경운 스님은 조선불교의 초대 교정으로 추대되었지만 나서지 않아서 만해 한용운 스님에게 권한대행을 하게한 선교 일치의 거장이었다. 나머지 세명의 스님도 강백으로 유명했지만 선(禪)에도 일가를 이룬 거장들이었다. 경붕 스님이 사람을 불러 선곡을 내려오게 하고는 물었다.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데 무엇을 보았다는 게냐?”
“무엇을 보았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보아도 다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경붕 스님은 시자를 불러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을 내오게 해서 시자에게 읽어주라고 했다. 한데 선곡은 몇 줄을 듣더니 말했다.
“아직 한 번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내용이 짐작이 갑니다.”
하면서 초심(初心)부터 자경문(自警文)까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데 막힘이 없었다. 경붕 스님이 선곡의 깨달음을 인가하고 출가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도인으로 소문이 나 있었던 용성(龍城) 스님을 찾아 갔다. 선곡은 봉두난발한 채로 용성 스님을 찾아가 자신의 마음속에 이글거리고 있는 소식을 전했다.
용성 스님은 물건이 왔다며 선곡을 인가하고 자신의 수제자인 선암사의 선파(禪坡) 스님 밑으로 출가시켜 법을 잇게 하였다. 그때 선곡의 나이 29세였다. 선파 스님 밑으로 출가했지만 오래 모시지는 않고 법에 대한 의심이 있어서 만공(滿空) 스님을 찾아가서 거량을 하였다. 마침 만공 스님은 법주사에 머물고 계셨다. 만공 스님이 법상에 올라 대중법문을 하고 있었는데 선곡 스님이 법을 묻고자 하니 만공 스님이 “네가 얻은 소식을 일러라.” 하였다. 선곡 스님이 좌정하고 말없이 빙그레 웃자 만공 스님은 “네가 왔으니 내 법문이 더 이상 소용이 없다” 하시며 법상에서 내려와 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