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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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과 法의 간격/김징자(칼럼니스트 )
‘순결을 소중히 하는 고귀한 성품을 지닌 여성과 천박하고 타락한 여성이 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여성을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누었다. 어처구니없는 편견이 아닐 수 없다. 여성들조차 여기에 익숙해져 이를 의심해 본적이 드물다. 아내에게는 순결을 강요하고, 밖에 나가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타락한 여성’을 필요악이란 이름으로 두어왔던 남성중심 사회가 만들어 낸 이중규범의 억지였다.
현대에 들어 페미니즘이 등장, 이 뿌리 깊은 편견을 바로잡으려 노력해 왔다. 도전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이제 ‘그것이 편견’임을 사회에 널리 인식시키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전의 ‘윤락행위 방지법’이며 얼마 전 시행에 들어간 ‘성매매 금지법’도 한국 페미니즘의 성과 가운데 하나다.
성(性)이란 매매 대상이 아니다. 그것이 매매 대상이 되는 순간부터 수많은 사회악의 온상이 되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성매매금지법은 그런 의미에서 보다 깨끗한 사회를 위한 올바른 선택으로 보인다.
법리의 엄정함이나 법 시행을 다짐하는 당국의 각오도 새삼스럽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기만 하면 한국 사회는 오랜 퇴폐의 늪에서 빠져나와 그야말로 깨끗한 사회가 될 것이란 기대를 가질만하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글쎄’라는 심정적 반응을 갖게 되는 것일까?
문제 자체가 어느 이데올로기적 잣대로 재단 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스스로의 도덕적 결벽을 믿는 사람들의 도덕적 잣대도 위험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인간의 욕망에 관한 문제다. 대부분의 종교가 인간 스스로의 욕망에 자신이 고삐를 잡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고삐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 우리는 이 드문 이들을 성자의 반열에 넣는다.
개인 사생활과 연관되기 마련인 고삐잡기 어려운 이 생리적 욕구를 엄정하게 법으로 집행하기가 그리 쉬울까? 아니, 이 같은 해결법이 오히려 문제 그 자체보다 더 나쁘고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역사적 통찰로 보건데 모든 악을 너무 서둘러 박멸하면 더 큰 악이 생기더라는 경험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둘째, 이 문제의 당사자인 성매매를 하는 여성 문제다.
예부터 성매매 여성은 사회의 대책 없는 약자들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들은 창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문제로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택한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그들은 이로써 생활비를 번다. 스스로 좋아 뛰어든 사람은 얼마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들이라 해서 ‘타락했다’는 괴로움이 없을까? 성매매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자살을 택한 성매매 여성들은 자책과 함께 막연함을 감당키 어려웠을 것이다. 보호되어야 할 ‘사회적 약자’의 자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가.
경제문제가 쉽게 풀린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성매매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도가 높은데 성매매를 택하는 여성이 나올 리 없다.
서구 현대사회의 고삐 풀린 성의 자유분방함도 성매매 시장의 위축을 가져왔을 것이다.
성매매를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엄정한 법 집행이 아니라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도를 높이는 일임을 우리는 선진국의 예에서 배울 수 있다.
200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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