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5 (음)
> 종합 > 기사보기
<3>천사를 만나셨습니까/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세상의 덧없음은 내 몸에서 벌어지는 법칙
생로병사와 무관한 생명체 어디에 있을까

○○데이, ○○날이 젊은이들 사이에는 항상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그날 모든 방송에서 아나운서들이 일제히 ‘천사데이’라고들 하더군요.
내 원 참, 대체 이건 또 무슨 말이람….
투덜거리다가 달력을 보니 그날은 10월 4일이었습니다. 1004이니까 ‘천사’라는 말이지요.
주위에 눈을 돌려 나보다 딱한 사정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면 천사의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이벤트성 날들보다는 한결 그 취지가 건강하게 느껴집니다. 천사(天使)는 말 그대로 하늘의 심부름꾼입니다. 타종교에서는 착한 천사와 악한 천사가 있는데 착한 천사는 신을 찬미하고 신에게 봉사하며 사람을 지켜준다고 합니다. 사람이 선행을 하도록 권하고 악을 피하게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천사는 사탄이지요.
부처님도 천사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천사의 성격이 좀 다릅니다. 그건 누구의 심부름꾼도 아니요, 당사자인 인간과 분리되어 있는 존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착하고 악하다는 그런 구분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끌려갔습니다. 이 사람은 살아생전 착한 일은 거의 한 적이 없어 앞으로 받게 될 과보는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염라대왕이 그에게 묻습니다.
“그대가 세상을 살면서 그대 앞에 천사가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대는 천사를 보았는가?”
“아니요. 저는 천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 사람은 우리가 요즘 생각하듯이 하얀 날개를 단 곱디고운 아기천사만을 상상하며 이렇게 대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에게 염라대왕이 이렇게 꾸짖습니다.
“너는 세상 사람이 갓난아기였을 때 강보에 싸여 똥 오줌 속에 누워 제 스스로 몸을 가누지도 말할 줄도 모르고,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조차 모르던 모습을 본 적이 없단 말인가?”
“그런 일이라면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천사이다. 너는 네 자신도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있느냐? 사람은 죽은 뒤에는 자기가 지난 세상에 한 일을 따라서 태어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을 보지 못했다 해도 착한 일을 행해 스스로 그 몸과 입과 뜻을 단정히 했어야 했거늘 어찌하여 방심하고 쾌락에 빠져 일생을 지냈더란 말이냐?”
염라대왕의 심문은 이어집니다.
“너는 세상 남자와 여자들이 나이 들어 머리가 희고 이가 빠지며 등이 굽어 지팡이를 의지해야만 겨우 거동할 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가? 그것이 두 번째 천사였다. 그리고 너는 세상의 남자나 여자들이 큰 병이 나서 앉아도 힘들고 일어서도 괴로웠으며, 죽을 날이 가까워 두려움이 그를 옥죄어 오지만 병을 고쳐줄 의사를 만나지 못해 고통 받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가? 그것이 세 번째 천사였다.
너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사람이 죽으면 살이 허물어지고 뼈가 부서지고 한 줄기 연기와 함께 재로 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가? 그 죽음이 바로 네 번째 천사였다. 너는 세상을 살면서 나쁜 짓을 저지른 죄인이 끔찍한 형벌을 받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바로 다섯 번째 천사였다. 너는 네 자신도 그처럼 늙어가고 병들고 죽어가며 중죄를 지으면 무거운 형벌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해보지 못하였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 어찌 그리도 착한 일을 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고 방심하고 쾌락에 빠져 일생을 보낼 수 있었던가?”(중아함 ‘천사경’)
이런 부처님 말씀을 접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과연 세상에는 천사로 가득합니다. 태어남이라는 천사, 늙음이라는 천사, 병이라는 천사, 죽음이라는 천사, 형벌이라는 천사…. 아마 이런 천사들의 모습을 보고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일 것입니다. 왕위도 가족도 버리고 황황히 출가를 하셨으니까요.
생로병사라는 천사와 무관한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가까운 친척에서부터 이웃들, 그리고 저 멀리 떨어진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사람들 하나하나에, 심지어는 내 몸에조차 이 천사는 깃들어 있습니다. 세상이 참 덧없고, 그 덧없음은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내 몸에서도 틀림없이 벌어지는 법칙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깨닫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이토록 악다구니를 쓰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천사의 모습을 보고도 느끼는 것이 없어서 날마다 악업만을 일삼는다면 나중에 쓰디쓴 과보가 돌아올 때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오직 제 스스로 그것을 받아야 한다고 경에서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365일 중 어찌 10월 4일 단 하루만 천사의 날이라 하겠습니까? 태어나서 마지막 호흡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날마다 천사의 날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004-10-20
 
 
   
   
2024. 5.2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