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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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고 체험한다면 그것이 참선
모든 것이 定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491호에 이어서)
▲질문자1: 희망찬 새해에 스님의 강녕(康寧)을 빌면서 먼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온 모든 불자들은 자성본래불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래 중생들이 부처라면 어떤 까닭에 무명에 가려서 자성불을 볼 수 없는지요.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십시오.
▲스님: 아까도 얘기했지만 자성본래불이란 근본을 말하는데, 즉 말하자면 근본 축은 움죽거리지 않고 그냥 힘만 가합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자체는 천차만별로 돌아갑니다. 근본에 의존해서 돌아갑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업식들이 그냥 곱게 가게끔 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다스려서 한군데 놓고 가야만이 그것이 올바른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볼 수가 있는 계기가 된다고 봅니다.
▲질문자1: 예,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불도를 닦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스님께서도 좌선이니 참선이니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참선의 방법으로 숨고르기라든가 좌선하는 이러한 것을 선방에서는 대단히 권유를 많이 합니다. 그렇지만 스님께서는 한 번도 좌선이라든가 숨고르기에 대한 권유를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스님: 그런데 좌선이라는 것이 모두 마음의 도리기 때문에 좌선 아닌 게 하나도 없거든요. 그러니 따로 좌선이다 좌선이 아니다 이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게 좌선이다 좌선이 아니다라는 거를 가지고 가르치다 보면 참선은 영 할 수가 없고 좌선도 할 수가 없고, 자기를 발견하기란 뭐 백 년, 천 년, 만 년이 가도 발견할 수가 없으니까요.
▲질문자1: 그리고 스님, 여러 가지 공부하는 방법을 많이 지도해 주십니다마는 저희들은 지혜라든가 자비에 대한 두 가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경전에 의하지 않고 여러 가지로 불쌍한 중생들에 대한 아픔을 이렇게 어루만져주시고 하시는데, 그러다보니까 과연 공부를 이렇게 해야 되는 건지, 거기에 대한 것이 머리 속에 남은 것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방법을 놓고 저희들이 시도를 해야 될지 그것이 의문입니다.
▲스님: 진짜로만 믿으신다면, 자기가 지금 말하고 듣고 보고 행하고 가는 그 자체를 잘 뒤집어서 자기를 볼 수 있다면, 진짜로 지혜로워야만이 자비도 나오고, 자비할 수가 있어야만이 내가 둘이 아닌 줄 알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루만지는 것도 자기요, 어루만지는 걸 받는 자도 자기요,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건 무슨 까닭이냐 하면요, 내가 항상 얘기해드리죠. 전깃줄을 하나만 가지고는 도저히 불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마저 쥐고 서로 연결하고 행하는 자와, 즉 말하자면 어루만져주는 자와 만져지는 자가 마음과 마음이 둘이 아닙니다. 서로 믿고 말을 할 때는 말입니다. 믿지 않든 믿든 이렇게 같이 대화를 하게 되면 이게 하나가 돼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전깃줄과 전깃줄이 한데 합치면 그냥 불이 들어올 뿐이지 합쳤다 안 합쳤다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어루만지는 자비로서만 베풀고 지혜는 가르치지 않는구나. 또 경전도 보지 못하게 하는구나.’ 이러지 마시고요. 경전을 보되 경전이 나를 보지 않게 하고 내가 경전을 보지 않게 볼 수 있다면 그거는 올바로 경전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경전을 보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보되 보지 말라 이 소리죠. 경전을 보고 또 경전이 나를 본다면 글자 풀이만 해나가는 거지 내면세계의 그 백지에 들어 있는 천차만별의 뜻은 하나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누가 이 책을 보는가? 네가 보고 있잖어? 그러니 나는 그냥 봐주는 겉눈과 겉손으로만 심부름 해줄 뿐이지 보는 건 주인공 네가 봐!’ 하고 볼 수 있는 그런 것을 지금 가르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것은 말을 안 해도 자기가 보는 거죠. 그런데 껍데기 자기가 본다고 생각하고 다만 글자 풀이로만 나가니까 이거는 경을 자기가 보고 자기가 경을 보는 게 되죠. 그러니까 자기 없는 자기가 경 아닌 경을 볼 수 있어야 된다 이 소립니다.
▲질문자1: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마음공부를 한다고 해서 ‘놓는다 믿는다’ 하면서 저희들이 공부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고 또 그 경계를 파악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근데 그때 그러한 내용들을 확인하려고 하는 충동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것을 확인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공부 방법인지 설명해주십시오.
▲스님: 그것은 확인을 하되 확인을 함이 없이 확인을 해야 하는 도리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공부를 했다고 해서 주인공에서 말을 하란다고, 하고 싶다고 해서 마구 내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거는 잘못되는 공부입니다. 왜냐하면 속에서 보이기도 하고 또 들리기도 하고, 어떤 걸 알려주기도 하고, 남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내 마음 속으로 한번 실험을 해보는 겁니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서 실험해보겠다는 느낌이 일어나서 실험을 해보는 거고 체험을 하는 거지 바깥으로 발설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누구한테 물어보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게 해나가라는 뜻이지 이거를 그냥 묵인하고 그냥 ‘실험해보지도 말라, 그냥 놔버려라’ 이러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발전이 없죠. 마음의 발전이 없어서 자기 능력을 자기가 계발할 수도 없고 얼마만큼 됐는지도 모르죠. 이건 남이 알아주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나를 알게끔 되는 거죠.
그래서 그랬잖습니까?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한 번 죽어야 하고, 둘 아닌 도리를 알기 위해서 죽어야 하고, 또 둘 아닌 나툼을, 일체 만물만생의 나툼을 알기 위해서 또 죽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하죠.
그러니까 모든 것을 실험해보려면 아무도 알지 못하게 그냥 실험해보는 거지, 어떻게 말을 바깥으로 하고 실험을 합니까? 그리고 체험을 하고 그러는 거죠. 그리고 도반들끼리 모였을 때 이렇게 얘기를 하고 돌아갈 때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첫째 당신에게 누가 되고, 둘째는 스님들에게 누가 되고, 셋째는 부처님의 뜻에 누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을 제시해주고, 속으로 자기가 실험하고 체험하게끔 일러주고 하는 것이 도반의 도리입니다.
▲질문자1: 예. 지금 스님 말씀하신 것을 참고로 해서 열심히 공부 잘 해보겠습니다.
▲스님: 또 질문하실 분 있으면 질문하세요. (컵에 든 물을 드시며) 요것도 소금을 조금만 더 탔으면 아주 감칠맛이 있을 텐데, 싱겁게 탔으니까 싱겁지. 그러니까 모든 것이 적당해야 돼요. 아주 적당해야 돼!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도 적당하게 그 정(定)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돼죠. 그래서 혜(慧)도 정(定), 계(戒)도 정, 모두가 정에서 이루어지는 거죠.

▲질문자2: 저는 의학을 전공한 자로서 인공 임신중절에 대해서 스님께 여쭙고자 합니다. 육도윤회 중에 인간으로 태어나는 과정인 태아의 단계에서 행해지는 법적으로 허용된 인공 임신중절 다섯 가지하고, 사회 경제적 사유로 인한 자율적 인공 임신중절이 있는데 경전에 의하면 인공 임신중절을 하는 것은 큰 죄라고 했는데 현시대에서 이에 대한 스님의 고귀하신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스님: 사람이 좁게 생각하면 한없이 죄가 되고요, 넓게 생각하면 죄가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모습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예를 들어서 그 태어난 사람을 이미 떼려고 했다면 거기에 태어나도 그렇게 큰 사랑을 받지 못할 겁니다. 한번 생각해봤어요?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욕을 할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그럴 바에는 얼른 옷을 벗고선 좋은 데로 천가가 됐으면 하는 거죠.
그래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 공부를 배워야 고생할 사람은 고생을 덜 하게 해주고, 또 태아가 잘못돼서 불구로 나온다 이럴 때는 빨리 천도해서 다시 좋은 결과를 보게 하는 것이 무명을 씻고 다시 나오게끔 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하는 일이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한 사람에게는 죄가 붙을 것도 아무것도 없지만 또 살려준 자체도 없고 죄 될 자체도 없고 이렇지마는 그런 도리를 모르는 사람에 한해서는, 즉 무의 세계인 정신세계의 50%를 모르는 사람에 한해서는 죄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 마음의 도리를 충분히 알아야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질문자2: 예, 알겠습니다. 또 한 가지 질문은 헌혈에 대한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 한말씀 해주십시오.
▲스님: 헌혈에 대해서도 뭐 꼬집어서 말할 수 있나요? 사람들이 피가 너무 많은 사람, 스스로 피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에 한해서는 헌혈을 해도 좋고, 또 생산이 충분하지 못할 때는 헌혈을 해서는 아니 되고 그런 거죠. 또 헌혈을 해가지고 남까지 괜히 고생시킬 그런 피라면 안 하는 게 좋고요. (대중 웃음) 하하하.
▲질문자2: 알겠습니다.

▲질문자3: (편지 봉투를 스님께 올리면서) 합격증 가져왔습니다.
▲스님: 네?
▲질문자3: 합격증 가져왔습니다.
▲스님: 합격증이요? 예. 감사합니다.
▲질문자3: 지난번에 스님 친견하고부터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잘 됐는데요, 안양까지 저는 전기 가설을 많이 해놨는데 전류가 제대로 흐르는지 좀 한번 점검해주세요. (대중 웃음)
▲스님: 하하하. 전력이 흐르는지 안 흐르는지 그거를 의심치 마세요.
▲질문자3: 예.
▲스님: 어디고, 어디고! 전력은, 즉 광력은 레이저 광선은 어디든지 어디에서든지 멀고 가까움이 없이 끌어쓸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의심치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질문자3: 네. 감사합니다.
▲스님: 또 질문할 사람 있어요?

▲질문자4: 스님,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그런 중생입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왔습니다. 그러니 어찌하겠습니까? 스님께 좀 몸을 매달리고 맡기러 왔죠. 그래서 왔습니다.
▲스님: 나한테 매달리지는 마세요. 내 모습한테 매달리진 마세요. 왜냐하면 당신을 끌고 다니는 당신 주인공만이 당신을 고칠 수가 있어요. 당신의 몸뚱이니까.
▲질문자4: 너무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니까 나쁜 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달리다가 찾아왔습니다.
▲스님: 그러니까 그 이름에 마음이 죽지 마시고요, 그건 이름일 뿐이다 하시고 ‘나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만이 나를 건강하게, 내 몸을 건강하게 끌고갈 수 있다.’ 하는 믿음을 진실하게만 갖는다면 오늘 저녁부터라도 괜찮죠. 그럼, 또 없습니까?

▲사회자: 원하는 대로 질문을 다 받으시면 한달이 가도 다 못할 테니까 오늘은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스님: (질문을 하기 위해 걸어 나오는 다음 질문자를 가리키시며) 저기 나오시는 분, 아, 나오시다 들어가면 민망스럽잖아요?

▲질문자5: 저는 체험담을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옆집에 제 손자가 살고 있습니다. 외손자인데, 며칠 전에 딸내미가 밤중에 전화를 해서는 애가 자꾸 울고 전혀 잠잘 생각을 안 하니 어떡하면 좋겠느냐 그래서 “그럼 내 갈께.” 이렇게 말하고 옷을 입고 갔더니 전화를 놓자마자 잠을 자더랍니다. 그래 거기에서 제가 한참 이야기를 죽 해줬습니다. 마음도리, 한마음을 관하는 도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제가 이 관하는 공부를 하기 전에 선도 공부를 좀 했었기 때문에 거기서 좀 잘못 봐가지고, 지금 한마음 공부 하는 이 자체도 좀 삐뚤어지게 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일부러, 이제는 바로 생각할 수 있고 바로 볼 수가 있을 텐데 저 혼자만 자꾸 애를 태우고 있다가 이런 기회에 올바른 생각을 갖도록 좀 해줘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날 저녁에는 거기서 잠을 잤습니다. 거기서 자면서 애를 바로 옆에 눕혀놔 놓고, 이제 금방 돌 지나간 앤데 잘 자요. 그리고 그 다음날 또 있으니까 또 잠을 안 잔다고 우리 집으로 애를 데리고 왔습니다.
▲스님: 하하하. 그 애도 스승이네요.
▲질문자5: 예. 아예 우리 집에서 잠자려고 데리고 왔는데, 그래 우리 집에서 자니까 또 잠을 잘 자는 겁니다, 또. 그래 그날 자고 또 그 다음날도 우리 집에 와서 또 잠자고 그러면서 그날 저녁에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한마음이라는, 너와 나의 마음의 선이 있는데, 나는 자꾸 선을 전류를 갖다 보내고 있는데 너는 거기서 다 차단을 하고 있으니까 너한테서 차단이 돼가지고 자꾸 그런 일이 있는 거 아니냐. 마음의 도리를 바로 네가 배우라고 지금 애가 자꾸 그렇게 보채고 그러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마음의 문을 열어라!”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그 말을 처음에는 모르더니 자꾸 큰스님 말씀을 반복해서 얘기하니까, 선과 선을 연결시키면 불이 들어온다는 그런 이치의 얘기도 하고, 우리 전체가 한마음으로 다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니까 끄덕끄덕하면서 그러더니 알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놓고는 딸네 집으로 보냈는데 그 이후부터는 그런 일로 집에 전화하는 예도 없고, 또 아이가 잘 잤느냐고 제가 전화하면 잘 잤다고 합디다.
▲스님: 허허허. 그래서 어떠한 애고라든가 병고가 좀 낫다가도 도로 그러는 것도 알고 보면 그게 병이 아닙니다. 공부를 완전히 가르치기 위해서지, 믿음을 완전히 주게 하기 위해서죠. 그러니까 그것을 콧방귀 뀔 수 있어야 됩니다, 콧방귀! 하하하. ‘이거쯤이야, 뭐. 네가 다 그러는 건데….’이렇게 콧방귀 뀔 수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멀고 가까운 게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라는 건 레이저 광선보다 더 빠릅니다. 빛보다 더 빠른 거니까요. 벌써 옷 입기 전에 전화를 받으시고 “어, 내가 갈께.” 했으니까 ‘내가 갈께.’ 하는 동시에 그냥 간 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도 둘이 아니요, 중생도 둘이 아니요, 마음도 둘이 아니요, 빛보다 더 빠른 것도 두루두루 같이 전달을 하고 돌아가니 이게 우주간 법계 아닙니까? 하하하.
▲질문자5: 스님의 가르침 덕분에 가정도 참 온화하게 돼가는 것 같습니다. 정말 참, 감사합니다.
▲스님: 예. 꼭 그렇게만 자꾸 실험을 통해서 아시고 체험을 하고 이렇게 가신다면 가정뿐만이 아니라 세세생생입니다.
▲질문자6: 저는 지금 스님 법문을 듣다가 뒤에서 너무 몸이 못 견뎌가지고 앞으로 나오게 됐는데 스님 앞에 막상 나오니까 몸이 아프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은 원래 보신탕을 좋아하는데요, 제가 못 먹게 말리면 더 먹으려고 합니다. 저는 그게 싫기 때문에 항상 안으로 돌려놓는다고 놓아도 잘 되지 않습디다, 스님.
▲스님: 그래요? 그 마음의 줄이 또 내 마음의 줄과 더불어 같이 닿는다면 남편 마음의 줄에도 닿겠지요. 그러니까 하여튼 남편이 먹기 싫어 구역질이 나야 안 먹을 테니깐. 하하하. (대중 웃음) 아, 먹기 좋고 아주 맛있고 그래야 먹지, 구역질이 나는데 어떻게 먹습니까? 알았으니까 하여튼 공부나 열심히 잘 하세요.
▲질문자6: 예, 감사합니다.

▲질문자7: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질문을 드리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스님께 감사한 마음과 지금 공부하는 수험생들을 위해 한마디 하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저는 작년에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하여 이제 2학년이 되는 학생인데요, 제가 대학교에 들어간 것이 다 모두의 덕분이라고 생각하기에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저는 부모님을 통해서 한마음선원과 인연을 맺게 되어 큰스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셋째주 일요일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해왔습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이 무엇인가를 저 나름대로 어렴풋이 알게 되었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내가 나를 죽이는 법은 없다’는 것이 가장 제 마음에 닿았습니다. 그리하여 시험 보기 전에는 주인공을 믿고 할 수 있다는 다짐을 여러 번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시험 보는 날 어떤 문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당황하자 저도 모르게 ‘주인공, 큰스님, 부처님!’ 하는 소리가 마구 나왔습니다. 급하니깐 저도 모르게 주인공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답이 떠올랐고 또 그뿐 아니라 제가 공부한 것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주인공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험생들에게 이것만은 말하고 싶습니다. 주인공의 존재를 절대로 의심하지 말고 어려울 때는 주인공을 믿고, 또 즐거운 일이 있을 때는 주인공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큰스님께 감사드리며 수험생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대중 박수)
▲스님: (박수를 치시며) 아이구, 장하구나! 하여튼 여러분이 지금 저 학생처럼 열심히,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을 진실히 믿고, 이건 대의적으로도 쓰이는 그런 이름입니다. 그것을 알고 본다면 모든 것이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니깐 주인공입니다. 그러니 진짜로 믿고 의심치 말고 모든 것을 거기에다 놓고 감사할 줄 알고 거기에다 놓고 돌아가게 할 수 있는 그런 문제를 제시한다면, 그리고 지켜보고 체험한다면 그것이 참선이요, 나를 발견하는 첫걸음이요, 아주 좋은 결과입니다. 뭐 거기서 와선이다 입선이다 뭐 좌선이다 할 것도 없고, 그냥 즉발 참선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생활하기도 복잡한데, 종교를 믿는 것조차 복잡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복잡하지 않게 발견하고, 복잡하지 않게 가정을 이끌어나가고, 복잡하지 않게 나를 내가 제도시키는 방법이 바로 그거라고 일러주는 거 아닙니까? 그냥 생활 자체가 종교예요. 뭐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불교라는 자체도 항상 얘기해드리지 않습니까? 일체 만물만생의 영원한 근본 자체가 바로 불(佛)이라고요. 그리고 또 보이지 않는 데서나 보이는 데나 서로가 말하고 교환하고 통신하고 서로 같이 돌아가면서 살고 이러는 자체가, 공생 공용 공체 공식화 하고 돌아가면서 말하는 그 자체가 바로 교(敎)란 말입니다.
그래서 ‘관세음’ 해놓고 ‘보살’ 이러죠. 이것이 어떠한 개인의 존재를 말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의 근본 자체를 그냥 이름 지어서 얘기한 겁니다.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을 어떠한 모습이나 어떠한 형상을 보고서 찾지 마세요. 만약에 그 형상을 보려면 색경을 보시면 알 겁니다, 관세음보살이 어디 있는지요. 하하하.
그럼 이만 그치겠습니다.

※위 법문은 대행스님 법어집 「한마음」의 내용 중에서 64호를 발췌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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