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공(慧空) 스님은 태고종총무원의 부원장 소임을 맡아 잠시 나누어졌던 마음을 모으고 종단의 재정 안정을 도모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스님은 태고종의 종정을 역임한 백암 스님의 친아들이다. 항상 온화한 얼굴로 종무직원들을 대하고 자상한 미소로 후배스님들의 자문에 응하기 때문에 늘 찾는 이가 많다. 원칙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면서도 어우러짐의 미학을 발휘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는 합리적인 인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태고종이 조계종의 종명을 사용하고 있던 시절에 관할했던 수많은 절을 다 내어주고 종단이라는 이름도 쓰지 못하고 고생하다가 단지 3개의 사설 사찰만으로 종단을 등록해 오늘에 이른 종단이기에 집중력과 재정구조가 약한 것을 걱정하던 백암 스님께서 종단에 희사금을 많이도 내셨다. 그래서 종도들이 칭송을 많이 했는데 그 소중한 기금이 특별하게 의미있는 곳에 쓰이기보다는 그저 총무원의 운영기금으로 쓰이기 일쑤였다. 공찰에서 살 때는 종단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니까 잘 따랐지만 사설사암 체제로 들어선 종단구조에서는 소유권이나 운영권에서 100퍼센트 자율권을 주다보니 분담금도 제대로 내지 않아 종무원들 월급주기에도 바빠 총무원 재무부장을 맡으면 월말에 돈 구하러 다니느라 코피가 쏟아지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목적 사업보다도 일반 사업이나 운영비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속 모르고 말하기 좋아하는 종도들은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10여년 전 중앙종회에서 종회의원들이 나서서 총무원을 질책했다. 그 때 혜공 스님이 일어나서 말했다.
“저도 저희 스님께서 희사하신 성금이 그렇게 쓰여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종단의 형편상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 또한 이해하고 있습니다. 덕암 큰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1970년도에 우리 종단을 처음 문교부에 등록할 때 신청서에 3개 사찰을 집어넣었는데 뒤에 한 사찰 주지가 조금 보완할 서류가 있다고 돌려달라고 하더니 그 서류를 다시 가져오지 않아서 꼭 있어야한다고 설득하느라 혓바닥이 갈라졌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스님도 오죽했으면 그랬겠습니까? 당시 경찰이나 구청에서 태고종에 등록하면 손해가 많을 것이라고 협박하는 듯한 정보를 주어서 그랬던 것 아닙니까? 그 때 3개 사찰에서 이제 2천 5백여 곳이 되었지만 작은 사설사암이 대다수이고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다 보니 형편상 그렇게 된 것이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 더 내고자 합니다. “
정작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더 뜻있는 곳으로 쓰이기를 누구보다도 더 원하고 있을 혜공 스님은 백암 스님의 뜻을 이어서 종단운영기금으로 많은 돈을 더 희사하겠다고 발표하여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이 역시 그 문손답다고 칭송하였다. 스님은 또한 태고종 스님들이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있는 중요한 사찰중의 하나인 북한산 태고사에 있는 태고보우국사 부도 주변의 땅을 사서 성역화할 수 있도록 종단에 기증하였다.
혜공 스님이 이렇게 종단을 향한 지극한 마음을 낼 수 있었던 기연(奇緣)이 있다. 백암 스님께서 동화사에서 동진출가해 열심히 수행하던 시절을 보내고 양진암, 내원암 등에서 소임 살다가 태고종에서는 법난이라 하고 조계종에서는 정화라고 하는 승단분규를 겪으면서 다 내어 주고 대구 시내에 내려와 살다가 동화사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동화사 뒷산인 팔공산을 다 뒤져서 갓바위부처님을 찾아내었다. 그때의 신심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당시 갓바위부처님은 소나무와 칡넝쿨이 우거진 속에 숨어(?) 있었다. 요즘엔 갓바위부처님을 친견하려고 전국에서 신도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인데 당시에는 산을 오르내리던 사람도 없고 신도도 없었기 때문에 수행에는 안성마춤이었지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려도 아침에 밥을 지어서 불기에 담아서 올라가면 다 식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주변을 정리하고 땅을 일부 파내 움막을 지어 기도를 하였다.
혜공 스님은 연세가 드신 백암 스님 보다는 자신이 해야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아랫절에도 내려오지 않고 열심히 기도정진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뒤가 묵직하고 힘이 빠지더니 하혈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하였더니 직장암이라는 것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다른 종합병원을 몇 군데 더 다녔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