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는 ‘값’ 아닌 ‘얼과 멋’으로 해야
우리 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우수하고 독특한 우리만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이루어왔다.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전래된 불교 신앙을 바탕으로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는데, 특히 민족의 얼과 불교의 사상이 융합되어 탄생된 한국의 불교미술조각은 우리나라 전통미술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근래들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고 또 불교미술의 맥을 이으려는 장인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조금씩 불교미술계가 활기를 되찾는 듯 해 전통 조각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값 싸고 질 낮은 외래의 미술품들이 단지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무분별하게 밀려들어, 대표적 전통의 거리라 할 수 있는 인사동의 상점은 물론 성스러운 사찰 경내, 심지어는 법당안까지 침범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석조, 목조에서 건축, 탱화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총망라되어 우리의 불교미술시장을 교란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신도들이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정성껏 보시한 불사금으로 삼존불상을 모신 대구의 모사찰이나 창원 모사찰의 사천왕상과 목탱화 불상 등이 모두 수입품이란 사실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불교미술의 발원지이자 최대소비처인 사찰에서 우리의 전통미술품 대신 수입품을 선택했다는 것은 지금 우리 불교미술계가 처한 위급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최근에는 우리 초(草)와 기술자들을 데리고 가 만들거나, 불상같은 경우 몸체만 수입해온 상태에서 얼굴부분만 우리나라에서 조각하여 우리나라 작품과의 차이를 줄여보자는 의도로 앞으로 더더욱 다양해지고 교묘한 수법으로 우리 미술계를 파고들거라 보여진다.
우리 불교미술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요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맥이 단절될지도 모르는 위기이자 전통공예인의 생존마저 위협 받고 있는 상황임에 틀림없다. 수입된 불상이나 미술품들이 우리의 전통미술품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앉아 우리의 전통불교미술품인양 행세하고 또 그대로 후손들에게 대물림 되는 일은 우리의 문화 유산 기반 자체가 붕괴되어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한낱 상품에 불과한 엉성하고 질 낮은 수입품이, 우리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해야 할 어린 학생들의 눈에 우리의 전통 미술품으로 오인되어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빼어난 전통미술품이 아닌 수입품에 학생들의 눈높이가 맞춰진다면 전통문화의 발전은커녕 퇴보하여 수준의 저하가 예상된다.
또한 부처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수 십년 갈고닦은 솜씨로 빚은 장인들의 작품이 앞으로도 계속 값싸고 질 낮은 수입품들에 밀려 설 자리를 잃는다면 뒤를 이어 우리의 전통의 맥을 잇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손쉽고 편한 일자리만 찾는 시대에 더 이상 우리의 옛 일을 전수 받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면 이 또한 전통의 맥이 끊기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한 나라의 전통과 문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 누가 어찌 만들든 겉만 흉내낸다고 전통예술품이 될 수도 없다. 우리 불교미술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키며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 작품 한 작품에 모든 정열과 혼을 불살랐던 선대 장인들의 땀과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그러한 장인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했던 국가와 불교계의 정책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한 전통미술품들이 우리나라의 전통을 만들고 문화재가 되고 후손들의 빛나는 문화유산이 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랜 역사와 더불어 찬란히 이어져 온 우리의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되살려 후대에 물려주는 일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임무이자 의무이다.
일반인들의 커다란 관심과 박수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전통공예에 몸담고 있는 우리 공예인들이 올곧은 장인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창조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사찰에서 무분별한 외국 불교미술품들의 수입을 자제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