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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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만 같아라’ 했으니…/김징자(칼럼니스트)
인심은 시대상황이 만든다. 화합하는 사회라면 이웃과 아픔을 함께 할 것이고 불화의 사회라면 이웃의 아픔에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정치권이 내놓은 갈등적 소모적 주제들로 유례없는 불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더불어 ‘이웃에 대한 무관심’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올 추석이 예년과 달리 썰렁하고 어수선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추석은 가족 친지 단위로 화목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명절이다. 이럴 때일수록 상대적 외로움과 소외감을 갖게 되는 불우이웃이 있어 예부터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온 것이 우리 국민심성 이었다. 그것이 현대로 이어져 추석이나 연말연시 등 명절이면 종교, 자선단체 신문 방송 등이 불우이웃에 대한 관심을 한번씩 환기시키곤 한다.
불우이웃 돕기가 어디 추석 연말연시 등 몇 번의 명절 때만 떠들썩한 연례행사로 치러져서 되는 일인가 라는 의문도 있다. 지난시대 강압적 정치 아래 겉치레 눈치 보기 생색내기 등의 비자발적 자선행태가 문제되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웃돕기도 관주도의 반강제적 성금모금에서 민간주도의 자발적 공동모금으로 바뀌었고 그동안의 성과도 두드러진다. 그만큼 ‘자발성’이란 점에서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며 이웃돕기는 연중행사로 바뀌어 가고 있다. 매스컴의 캠페인이나 기업들의 기부, 자원봉사도 연중 자발적,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추석을 맞는 지금 불우이웃은 더 늘어나고 왜 그들에 대한 관심은 싸늘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인가.
이웃돕기는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이웃에 대한 선한 관심을 기울이며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을 키워야 한다. 화합하는 사회가 바탕이 돼 준다면 이 또한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불우한 이웃을 곁에 두고 끼리만이 즐거울 수 있다면 이는 부끄러움일 것이다. 비록 불화의 시대이긴 해도 동체대비와 동사습의 가르침을 소중히 하는 불자들만이라도 앞장서 이웃과 따뜻함을 나누는 추석을 만들도록 해 보자.
200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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