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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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신의 아들’/이우상(소설가·대진대 문창과 겸임교수)
“사나이답게 싸우다 장렬하게 죽는다. 알겠나?” “예!” “전원 유서를 써서 전투복 상의 주머니에 넣는다. 실시!” “실시!”
갓 임관해서 전입온 소대장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데프콘2 발령, 전투개시 직전 상황이다. 제대 특명을 받아놓은 고참병들도 예외 없이 완전군장을 하고 비장한 얼굴로 소대장의 지시를 듣고 있다. 이른바 8·1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1976년)이 터졌을 때의 상황이다. 입대 5개월 째, 신병 티를 벗지 못한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찢어 몇 장의 유서를 썼다. 우린 모두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어 최전방까지 팔려온 노예였다.
그러나 용감히 싸우다 장렬하게 죽겠다는 결의는 바위처럼 굳고 단단했다. 그러나 전쟁은 터지지 않았고 유서는 불태워버렸다.
지금도 유효한 오래된 농담이 있다. 병역 면제자는 신의 아들, 방위 근무자는 장군의 아들 그리고 현역병은 어둠의 자식들이란다. 20대 초반의 2~3년은 황금의 시간이다. 지적 관심, 순발력, 두뇌 회전, 집중력, 체력 등이 비수같이 날카롭고 헬리콥터처럼 역동적이다. 재벌의 자식이든 연예인이든 운동선수든 그 함량은 동등하다. 그래서 피하고 싶은 것이 군대이다.
군대 생활이 힘든가, 출산의 고통이 힘든가? 젊은 남녀들의 논쟁을 잠시 엿들어보자.
남: 출산은 육체적 고통이 대부분이지만 군대는 지능저하, 지위격하, 기계화, 물상화 등 각종 정신적 불이익을 수반한다.
여: 너희는 임신 중 직장생활과 육아의 스트레스를 알지 못해.
남: 출산할 때에는 주위의 온갖 축복과 찬사를 받지만 군대에서는 온갖 수모에 굴복할 것을 강요당한다.
여: 허허, 3대 독자와 결혼해 딸 한번 낳아봐!
남: 출산은 애인과의 결합을 확실하게 보장해주지만 군대는 애인과의 결별을 부채질한다.
여: 결혼해서 애 낳아봐. 애 치다꺼리하느라 남편은 쳐다보지도 못해.
남: 출산은 자신의 인생을 위한 몸부림이지만 입대는 인생의 일부를 조건 없이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다.
여: 출산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냐.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체력단련하고 온다고 생각할 수 없니.
국민소득 3만달러가 되어 모병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병역은 의무이다. 신성한 의무이다. 출산의 고통과 대등한 고초가 수반되는 의무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즐기다보면 어둠의 자식들이 어느새 태양의 아들이 된다. 햇빛 아래 맘껏 활개치고 다닐 수 있다.
군대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졸병 시절은 밑바닥 인생이나 고참병이 되면 황제에 등극한다. 또한 군대는 수행 도량의 축소판이다. 신병 시절에는 손에 물 마를 날 없는 행자와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상급자가 되면 권위와 위엄을 갖춘 방장 스님이 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신의 그릇 됨됨이를 다듬는다. 군사문화에는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은밀한 거래, 고부가가치 산업인 병역비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한다. 관료의 의지와 제도의 정비로 가능한 일이다. 지도층의 솔선수범(노블리스 오블리제) 또한 필요하다. 세상 인심이 소란스러워 자이툰 부대 병사들은 따뜻한 환송도 받지 못하고 전장으로 갔다. 그들의 안녕과 무사귀환을 기원한다.
국가의 힘은 복합적이다. 청년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무게를 지닌다.
200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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