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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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없고 너도 없고 모두 나 아님 없어
여러분께서 이렇게 주야로 한자리 하게 되는 것은 상당히 근기가 높다고 봐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으로 태어났으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만 됩니다. 또 나로 인해서 내 근본이 우주와 더불어 같이 상응이 되고 직결돼서 모든 게 전달되고 돌아가는 이치를 우리가 꼭 알아야만 되겠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한테 어떤 때는 참 감사함을 느끼고 그럽니다. 어떠한 조건으로 왔든지 온 거는 사실이고, 어떠한 문제를 가져왔든지 그것은 공부하는 데 전부 재료니깐 말입니다. 하여튼 장합니다.
우리 몸뚱이 속에 있는 중생들을 다 제도를 해야 마지막에 내가 성불을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누이 말씀드려서 아시겠지만, 다시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는 그걸로 인해서 모두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많기에 말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영혼에 따라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악업 선업이 거기에 부합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몸속에 있는 의식들이 찰나찰나에 여러분을 괴롭히기도 하고, 여러분을 병고로 휘달리게도 하고, 애고도 나오고, 유전성도 나오고, 영계성 업보성 세균성까지도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괴롭히는 것을 녹여야 된다 하는 것은 모든 거를 나오는 데다가 되놓을 수 있다면, 안되는 거는 되게 마음을 내서 맡겨 놓고 또 되는 것은 감사하게 맡겨 놓고, 이렇게 해야만이 일체가 다 하나로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되고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공부를 하는 데는 참으로 근기가 약하면 산란해져서 바깥으로 끄달리고 일일이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럽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맡겨 놓는다면 신경을 쓸 일이 그렇게 없다고 봅니다. 물론 정신적인 보살의 행은 모두가 내 몸속에 있는 중생들부터 제도해야 마지막에 자기가 성불을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은 몸뚱이 속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의 중생도 자기 아님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자기 마음이 중요하다 하는 것은, 잘못되는 것은 잘되게끔 다스리고 잘되는 것은 감사하게 잘 다스리고 이렇게 해서 마음으로 자유자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주인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주인이 몸속에 있는 모든 중생들을 한데로 한마음으로 모아서 내가 마음 쓰는 대로 그것이 법이 돼야 되고, 그것이 바로 화신, 보신, 보현신입니다. 그 법신, 보신 이런 것으로 모든 중생들이 화해서 보살행을 할 수 있는 응신이 돼야, 마지막에 가서 내가 성불을 한다는 겁니다. 그 양면의 모든 거를 한군데서 나온다고 믿지 않는다면, 이건 어디까지나 허공을 가지고 허우적거리는 거와 같습니다. 땅에서 엎드러졌으면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허공을 허우적거린다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내 몸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자기의 업식이지 딴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애고를 딴 데서 갖다 주는 것도 아니고 뺏어 가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자기한테 주어진 것이 지금 나오는 거지요.
이런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것은, 여러분이 침착하게 잘 들으셔야 하고, 듣는 것도 귀로 들어서는 안 되고 마음으로 들어야 된다는 얘깁니다. 모든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에, 몸속에 있는 중생들이 뒤죽박죽 사는 것 같지만 질서정연하고 조금도 에누리가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만 됩니다. 그런 반면에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한번 검토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돌아가는지 어디를 갔다 오는지 그걸 몸속의 중생들이 모릅니다. 그러니깐 내 마음이 내 육체 속에 있는 의식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듯이 우리는 또 지구 자체가 어디로 돌아가는지 그걸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몸인 이 조그마한 혹성과 같이 지구의 혹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뒤죽박죽 돌아가는 거 같지만, 그래서 순서도 없고 뭐 아무 질서도 없는 것 같지만 아주 질서정연하게 에누리 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지금 이 한 세상 “아휴, 이놈의 세상! 왜 이렇게 복잡하고 이래?” 하지만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겁니다. 자기가 한 대로 받게 돼 있고, 한 대로 주어지게 돼 있고, 자기가 마음 쓰는 씀씀이에 의해서 주어지고, 마음 씀씀이에 의해서 행해집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자동적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남을 때리면 맞아야 하고 사기를 쳤으면은 사기를 당해야 하는 것이 분명코 있습니다.
우리 살림살이가 이렇듯이, 지구의 혹성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 혼란스러운 정맥 동맥이 인간에게 그저 쉴 사이 없이 돌아가듯이, 지구도 역시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질서정연한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해야만이 우리의 생각대로 지구도 멋진 지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생각을 잘하고, 작용을 잘하고, 행을 잘하고, 모든 것에 겉으로 허황되게 논란을 부리지 말고, 허우적거리지 말고 이렇게 해야만이 지구에 어떠한 일이 생긴대도, 흠집이 났다고 병이 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씻은 듯이 나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뚱이와 같습니다.
지구에서 붙어 사는 이 자체가 바로 우리 몸속에 붙어서 사는 중생들이나 똑같습니다. 우리가 잘 작용을 해줘야만이 지구의 수명이 길어지고 더 건강해진다 이 말입니다. 우주 천하 모두가 다 그렇게 연쇄적으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각자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죠.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하는 그 간단한 말이 실은 간단치는 않습니다. 내 몸 하나도 주체를 못하고 내 몸속에 있는 중생들도 제도 못하고 돌아가는 이런 판국인데 어찌 지구의 뜻을 알겠습니까? 멀리 생각하지 마시고 내 몸과 같이 생각한다면 똑 맞을 겁니다.
지금 여러분이 과학자와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게 아닙니다. 박쥐가 촉각을 일으켜서 오는 음파를 잘 통하고 그러는데 그런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를 가만히 보십시오. 물 한방울이 때로는 정말 독약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선약이 될 수도 있고, 물 한방울이 말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이 짐승도 될 수 있고 저 짐승도 될 수 있고, 이 꽃도 될 수 있고 저 나무도 될 수 있고, 이 사람도 될 수 있고 저 사람도 될 수 있고, 물 하나가 그렇게 변해서 화하여 돌아갑니다.
그렇게 물이 변해서 나무가 됐다가 꽃이 됐다가 물이 됐다가 흙이 됐다가 허공이 됐다가 이렇게 조화를 부리는데 어떤 게 됐을 때에 이게 과학자가 지어놓은 이름이라고 하겠습니까? 약만 하더라도 물 안 들어간 게 하나도 없고, 만물이 물 안 먹는 게 하나도 없고, 만생이 물 안 먹는 게 하나도 없다 하는 얘깁니다. 그러면 사람사람의 근기에 따라서, 모습에 따라서 모두가 변동이 된다 이겁니다. 지구도 물의 일종이죠. 흙과 물, 불, 바람의 일종이죠. 사람만 그렇게 바탕이 돼 있는 게 아니라, 지구도 그렇게 바탕이 돼 있기 때문에 천지조화를 부릴 수 있는 그런 능력이 모두 주어진 겁니다.
그러니 우리 자체도 그렇게 비유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될 때에 과학자들이 “아버지다” 이렇게 할 수가 있나, 또 아들이 될 때에 과학자가 “그건 아들이다” 이럴 수가 있나, 그럼 남편이 될 때에 과학자가 “남편이다” 이럴 수가 있나요? 자동적으로 돌아가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머지않아 과학자들도 생각하는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말로는 이름을 지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무(無)의 세계의 천차만별로 돌아가는 이치를 어찌 말로 써놓을 수 있으며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며, 어찌 이거라고 꼬집어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간단하게 비유한 것이 아버지, 남편, 아들, 사위 이런 걸로 비유했습니다. 그렇게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걸 아시겠죠.
우리가 제일 중요하다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서 마음으로 잘 들으셔야 합니다. 내 몸속에 있는 중생들이 제각기 벌어진다면, 즉 말하자면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업식이 제가끔 논다면 운명 팔자를 못 면합니다. 그런데 내 마음으로 다스려서 그걸 하나로 뭉쳐서 한마음으로 되면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주는 것이 법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법이 되는 거죠. 그러니 그렇게 한군데로 모아서 내 말을 다 들을 수 있는 문제가 따르죠. 옆구리가 아프다 그러면 옆구리에 작용하는 그놈들에게, 바로 한마음이 되어 주고, 둘이 아닌 까닭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요소요소를 진행해나가면서 모두를 하나로만 들어줄 수 있는 리드하는 마음의 주인이 있어야, 모든 중생들도 다 리드해나갈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렇게 리드해나갈 수 있어야만이 그 말 자체가 법이 되고, 행 자체가 그대로 법이 된단 얘깁니다.
그것은 왜냐하면은 중생들의 마음이 내 마음을 따라 배우고 나가는데 모든 것이 흡수돼서, 팔자 운명이라든가 그런 걸 떠나게 되는데 내 마음에 의해서 모든 것이 돌아가기 때문에 그때는 바로 마음이 없어지고 그 의식이 없어지죠. 그러니까 딴 의식으로 돌려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로 보신으로서 응신으로서 화한다 이겁니다. 그래서 천백억화신으로서 능히 법신이 되고, 응신이 되고, 보현신이 되고, 부처가 되고 그 중생들이 다 제도가 돼서 자유자재권을 얻어야만이 마지막에 내가 천백억화신의 대표로서 성불을 할 수 있는 거다 이 소립니다.
그런 거와 동시에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 안에서 일어나는 일, 이것이 동시에 똑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까도 얘기했듯이, 내 마음의 훈련이 그렇게 되고 계발이 되고 그렇게 자동적으로 작용을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스스로 생길 때, 지구의 수명도 길게 할 수 있고 태양의 수명도 길게 할 수 있고 은하계의 별성들도 다 내 중생과, 내 몸속의 중생의 별성과 똑같이 이룰 수가 있다 이 소립니다. 물론 자유자재한다고 그래서 미운 사람이 있으면 죽이고 이쁜 사람이 있으면 살리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이쁜 사람은 이쁜 사람대로 살리고 미운 사람은 미운 사람대로 살린다.’ 하는 그 뜻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공부한다, 부처가 됐다 이러더라도 그 부처가 되기 이전에, 수억겁을 거치면서 공부하면서 나올 때에 뭔 짓은 안 했겠습니까? 과거에 강도질을 했는지 살인을 했는지 어떻게 압니까? 그러니 몰랐을 때 내 모습, 잘못했을 때 내 모습, 내가 알기 이전에 몰랐을 때 내 모습으로만 모두 본다면 밉고 곱고가 따로 없죠. 지금 내가 배우고 가는 내 기준으로 보지 마세요.
항상 자식들도 내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탈이 나는 겁니다. 자녀들 속에 들어가서 내가 자녀로서 한마음이 된다면 폐단이 올 일이 없습니다. 부모한테는 부모한테로 들어가서 부모가 돼버리면, 그 기준에 선다면 폐단이 올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 기준에서 항상 얕보고 “너는 이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안 하면 넌 밥 빌어먹는다.” 부모더러는 하는 말이 “당신네들 옛날 방식으로 그렇게 살아나가면 살 수가 없습니다!” 이러거든요. 그렇게 하면 어찌 한마음으로 이 우주 천하를 통일을 하겠습니까? 한마음으로 말입니다.
모습은 제각기 다르지만, 차원도 다르고 그렇지만, 그 마음들은 본래부터 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본래부터 잘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나오다보니까 물질에 끄달리고 먹고 사는 데 끄달리고 애착에 끄달리고 욕심에 끄달리고 모두 그러다보니깐 잘못된 거지 애초부터 잘못된 건 아닙니다. 그러니 부처님도 자기가 부처님이 되기 이전에 어떻게 굴러왔다는 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모두가 얕은 것도 높고, 높은 것도 높고 평등하다는 거죠.
여러분이 모두 잘못되는 거를, 고통을 알아야 고통이 고통이 아닌 줄 압니다. 우리가 목마르고 춥고 떨릴 때 뜨거운 엽차를 한 잔 마셔 보십시오. 춥고 떨릴 때 말입니다. 엽차를 마실 때에 뜨겁고 시원하고 그렇죠? 뜨거운 걸 알기 때문에 시원한 겁니다. 뜨거운 걸 모르면 시원한 것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생활하시면서 어떠한 고(苦)가 닥치고, 애고가 닥치고, 병고가 닥친다 하더라도 그걸 재료로 삼아야지 허공을 허우적거리듯 “나는 인제 죽었다.” 하고 신경질을 내고 온통 이 야단들을 치면 몸 상하고 집안 망하고, 식구들이 전부 제각기 헤어집니다, 마음들이 말이에요. 한 사람의 마음이 잘못됨으로써 식구가 다 망가진다는 것을 아셔야 하고, 병든다는 것을 아셔야 하고, 가난해진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름에 끄달리지 맙시다. 모두가 이름에 끄달리다가는 이것도 저것도 정말 뒤죽박죽이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여러분이 참 답답할 때가 많이 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허허, 나도 예전에 저렇게 몰랐었지? 허허, 내 모습 같구나!’ 이렇게 하면 정말 진정코 애닯고 애처롭고 그렇게 되지, ‘저걸 몰라서, 저거 저렇다.’ 이렇게 되질 않습니다. 또 사실이 그렇고요. 여러분이 지혜가 풍부해야 조건 없는 자비도 나오지 지혜가 풍부하지 못하면 조건 없는 자비를 베풀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을 위하고 부모를 위한다 하더라도 자유스럽게 살 수 있도록 행해야지, 말로나 행동으로 억압하고 이렇게 한다면 마음이 넓어질래야 넓어질 수가 없습니다. 가만 내버려두세요. 저 산천초목의 모든 푸르름도 가만히 보세요. 제 이파리가 져서 떨어지고 져서 떨어지는 것이 거름이 됩니다. 그런데 또 거기서 잘 자라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오히려 망가뜨려놓는단 말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니만큼 그것도 망가뜨린다고 할 수도 없죠. 잘못되고 잘되는 것은 물 흐름에 의해서 돌아가는 거니까요. 말하자면 마음들에 의해서 돌아간다 이겁니다. 마음 떠나서 계발할 수 없고 마음 떠나서는 원력을 세울 수가 없지요.
그러니 여러분이 가정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만이 마음에 속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내버려두면은 자동적으로 계발이 될 수가 없고, 창조력을 이룰 수가 없고 발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래서 금을 장농 안에 가만히 넣어두고 있으면 이것이 발전이 될 수가 없어서 늘지 못한다, 금이 말이에요! 그러니깐 장롱 속에서 금을 꺼내서 자꾸 굴리는 겁니다. 그래 나중에는 금이 많아져서 모두 나누어주게끔 되더랍니다. 그게 지혜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안에서 상대를 보고 일어나는 마음도 다 내 마음 가운데서 이거는 어떻고 저거는 어떻고 다스려서 놓을 줄 알아야만이 정식으로 참선이 될 수가 있는 거죠. 내가 항상 얘기하죠. 앉아서 좌선하는 것만이 참선이 아니다. 모두가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데 아버지가 됐을 때 아버지라고만 고집하면 아들 노릇은 어떡하며 친구 노릇은 어떡하며 남편 노릇은 어떡하느냐 이 소립니다. 그와 같이 꼭이 마음 자체가 천차만별로 보고 듣고 행하고, 모든 거를 들이고 내고 하는 것을 그냥 마음 가운데다 척 놨을 때에 마음이 편안해야, 일하면서도 편안하고 서서 가다가도 편안하고 앉았는데도 편안하고 똥을 눠도 편안하고 이래야 좌선입니다. 이게 좌선이자 참선이 되는 것입니다.
생활에서 고통이 오는 것을 그 고통만 가지고 허우적거리지 마시고, 그 고통이 어디서 온 거를 안다면, 아까 뜨거운 것을 알아야 시원한 것을 안다 이랬죠. 그와 같이 그냥 시원하게 대치를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디서 온 걸 모르니까 허우적거릴 수밖에요. 그러니까 어디서 온 거를 알려주기 위해서 관법을 말한 건데, 관하는 거는 그냥 ‘주인공이 잘 해주시오!’ 하고 말로만 이럭하고는 거기 근처도 못 가는 거예요.
진짜로 인간이 어디서 오고, 어떡해서 이렇게 끌려서 돌아가는지, 운명 팔자가 어디서 오는지 그것을 안다면 대치를 할 수가 있죠. 그런데 그게 어디서 오느냐는 것을 일러줘도 대치를 못하는 겁니다. 모든 거를 삼천대천세계의 근본과 사람의 마음 근본을 한데 합쳐서 ‘주인공이다’ 이랬는데도 주인공을 믿고 놓을 생각은 안 하는 겁니다.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그냥 ‘너 알아서, 너밖엔 할 수 없다.’ 하고 거기다가 맡겨 놔야 되는데, ‘해주시오’ 해놓고는 그냥 바깥으로 막 난장판이 되는 거죠. 그렇게 난장판이 되니까 속에서도 의식들이 난장판이 될 수밖에요. 나뭇가지를 갖다 여러 개를 모아서 놓으면 부러뜨릴래야 부러뜨릴 수가 없습니다. 어느 거든지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헤어지면 그냥 부러지게 돼 있습니다. 그와 똑같습니다.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도 구분이 있듯이, 구분 없는 도리를 알아서 구분을 적절하게 정해서 지혜로이 다스려나갈 수 있는 그런 넓은 마음이 돼야 된다는 얘기죠. 우리가 만약에 내 몸뚱이도 이끌어갈 수 없다면 내 가정도 이끌어갈 수 없고, 내 가정을 이끌어갈 수 없다면 사회도 이끌어나갈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구도 우리의 집도 다 무너뜨리고 말 겁니다. 지구는 우리의 몸뚱이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구의 마음과 생명의 근본, 이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둘이 아닌 도리를 알아야 지구의 집도 수명과 더불어 건강체를 만들 수가 있다는 겁니다. 사실입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체험이 없이 책을 읽어서 말로만 “남이 이렇게 하더라.” 이렇게 하는 말은 한데 떨어지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책에 있는 것이라도 이것이 쓸 만하다 하면 그냥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해야 되는 거죠. 자기 것을 만들려면 얼만큼은 말없이 묵언하면서 그것을 굴려서 진짜로 법으로 내놓을 수 있는 그런 게 돼야 되겠죠. 남한테서 듣고서 홀랑, 아는 것처럼 이렇게 그냥 말을 마구 해버리면 그거는 말 자체도 떨어질 뿐 아니라 그건 오히려 남한테 이익을 주지 못하고 나한테도 이익을 가져오지 못한 채 이건 망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혜로워야 한다.’ 하는 것을 비유를 들어 한마디 해보겠습니다. 동서끼리 말을 전했을 때, 이 말을 전해서 좋을까 나쁠까를 잘 생각해서 이익이 되게끔 다스려서 해야 하는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남한테 이익하게 하는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거 아주 몹쓸 사람이라고 그렇게 욕을 했어도 “칭찬을 하시더라.” 하고 이렇게 말끝에라도 그렇게 얘기를 해야 ‘아하, 나는 그렇게 말을 했는데 거기서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회개를 하면서 다시 그와 똑같은 마음이 돼버린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까 다스리는 것도 천차만별이죠. 그러니 거짓말도 거짓말 아닌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진짜 거짓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수긍이 간다면 일체를 지혜롭게 살아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말로만 이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정말이지 어떤 땐, 허허, 나야 답답할 게 없습니다마는, 나라고 한다면 답답할 게 없다 이거는 뭐냐? 모두가 나 아님이 없을 때 답답합니다. 나니까, 즉 나니까요! 각각 상대로 본다면 답답할 게 하나도 없죠. 그러나 상대성으로 보지를 않고, 즉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모두가 이렇게 나 아님이 없이 살고 있다 할 때는 답답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도 “허허, 모두가 둘이 아닌 까닭에 그러한 좋은 지혜로운 것을 전달을 하려면 둘이 아니게 전달이 되는데.” 하고선 싱긋이 웃습니다. 애처로울 때가 많아서 말입니다.
그러니 나라고 생각 안 할 때, 모두 부모가 돌아가셔도 그렇고, 한 번 울어보신 분 계시죠? 아주 섧다고 울어도, 그건 자기로 인해서 우는 율이 8, 90%죠. 부모를 위해, 부모 생각을 하면서 우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분이 좀더 더 살아줬으면, 더욱 고생을 해줬으면 하는 소리지. 하하하. 그저 자기 길러준 것도 생각 못하고 그냥 애까지도 갖다 맡기고 야단법석이죠. 세상에, 그런 생각을 한다면…. 하여튼 착은 두고 살지 맙시다. 착을 두면 오히려 거리가 생기고 오히려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착을 두지 않아야 사랑을 할 수 있고 진짜 조건 없는 사랑으로써 믿고 맡길 수가 있는 거죠.
사람이 오래 살고 늙었다고 해서 잘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모두 여러분의 기준에 의해서, 판단에 의해서, 판단을 잘하든 잘못하든 그릇이 작든 크든, 자기 판단에 의해서 애들을 나무라고 애들을 생각하는 그런 기준은 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야 사랑도 무엇인지 알고, 정말 진짜로 뜨거운 사랑을 자식들도 알 수 있고 부모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언젠가 한번 그랬죠. “진짜 사랑을 하걸랑은 놔줘라. 부부지간에도 진짜 날 싫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진짜 사랑한다면 놔줘라. 붙들고 있는 게 사랑이 아니다.” 라는 말을 했죠. 그러니 여러분, 제가 한 달에 한 번씩이든 이렇게 말을 해드리는데 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바다가 되어 돌아가는 물속에,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그 물에, 눈물 한 방울이 눈에서 흘러내려서 뚜벅뚜벅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진실로써 내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드시더라도 ‘아, 모자라는 것도 봐야 내가 모자라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니까, 바로 그것도 내 스승이다.’ 이렇게 하십시오. 하다못해 풀 한 포기 보고도 스승이라고 믿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지금 모두 스님들도 그렇고, 아만과 아상이 많아서 내가 나라는 거를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또 비구 스님들은 비구니가 알면은 얼마나 아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비구니 비구는 모습입니다. 모습! 화가가 그림을 어떻게 그려놨느냐에 따라서 그림이 주어지죠, 그 그림에 의해서 말입니다.
마음이라는 아주 영원한, 불생불멸할 수 있는 영혼의 근본 그 자체는 우주의 근본과 더불어 같이 돌아갑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물에서 와서 물로 가는 거나 똑같습니다. 물에서 와서 물을 따라서 물줄기 가는 대로 돌아갑니다, 지금 한 계단 한 계단씩 말입니다. 지금 지구도 물주머니 속에서 살고 있지요? 우리 역시 안 그런가요? 물주머니에서 나와서 물주머니에서 살고 있죠. 공기주머니도 역시 물주머니나 한가지니까요.
이럭하고도 그 영원한 길을 진짜 알지 못하고 가신대서야, 알지 못하고 이 육신 옷을 벗는대서야 어찌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말도 안 됩니다. 그래도 인간으로 진화를 시켜서 이날까지 왔는데, 끌고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죠. 칼을 뺐으면은 뺀 대로 뺀 그 칼이 모두 나 아님이 없는 그 자체를 살리고 건지고 모두 둘이 아니게 하늘을 받칠 수 있는 그러한 도리를 행해야만이 되겠지요. 여자 남자를 따지지 맙시다. 근본은 둘이 아닌 까닭이죠. 하다못해 풀 한 포기, 지렁이 하나도 스승 아닌 게 없는 걸로 알아야 할지언대 비구 비구니 따지고, 속인 따지고 이런다면은 어찌 하나도 버릴 게 없이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내가 여러 말을 자꾸 하면 질문하실 분들이 못하시니까, 질문들 하시도록 하십시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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