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제 강의는 본래 두서가 없습니다. 독자들 가운데는 제가 <금강경> 강의를 하겠다고 간판을 걸고선, 정작 경전 본문에는 집중하지 않고 엉뚱한 소리나 늘어놓는다고 핀잔을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변명을 좀 해볼까요. 이 참에 이 강의의 성격을 한 번 더 분명히 해 둘 겸해서 말입니다.
길거리의 잡담으로 불교를 말한다
1) 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금강경>은 여러분 모두가 갖고 있고,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새삼 보여줄 뿐이지요. 수많은 선지식들과 만해 스님이 일러 주듯이 “<금강경>은 먹으로 씌어진, 펼쳐서 읽는 책이 아닙니다.”
2)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무슨 얘기도 적절치 않지만, 또 반대로 무슨 얘기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불교는 전자에 초점을 맞춥니다마는, 저는 후자에 더 신나 합니다. 원효 스님은 <대승기신론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면 수많은 교설로 펼쳐지고, 닫으면 한 마음으로 모인다. 열고 닫음에 자재하고, 세우고 부숨에 걸림이 없다. 펼쳐도 엉키지 아니하고, 닫아도 협착하지 않다. 세워도 얻는 것이 없고, 부수어도 잃는 것이 없다.”
그런데 제 강의가 이 펼치고 조이는 사이 어디쯤에 있기는 한건가요. 3) 그렇다고 무슨 얘기나 다 금강경이 될 수는 없겠지요. 서가에는 <금강경>의 구절들을 주석하고 의미를 풀이해준 수많은 해설서가 있습니다. 그걸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겠지요. 저는 좀 다른 방식으로 <금강경>을 말하고 싶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강의 맨 첫머리에 인용한 경허 대사의 말씀을. “그 뜻을 얻으면 거리의 잡담도 다 진리의 가르침이요, 말에서 헤매면 용궁의 보배곳간도 한바탕 잠꼬대일 뿐이다(得其志也, 街中閑談 常轉法輪, 失於言也, 龍宮寶藏 一場寐語).” 바라건대는 제가 소옥의 이름을 부르더라도 거기 낭군을 그리워하는 양귀비의 마음이 담겨있음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4) 그래도 우리가 어디메쯤 있는지는 알아야겠지요!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부처님 손바닥 안입니다. 우리는 아직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제목 속에 있습니다. 아직, ‘반야’를 더듬고 있는 중이지요. “반야는 무엇을 깨고자 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번뇌와 무지이다. 그럼, 이 번뇌와 무지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고, 강화되는가.” 저는 이 물음이 <금강경>뿐만 아니라 불교의 관건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오랫동안 이 문제를 설파하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금강경> 본문은 더듬을 시간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건, 글쎄요. 불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선이 바로 그러자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뻔뻔스럽게 배짱을 내밀고 나서, 또 엉뚱한 얘기 한 자락을 늘어놓을까 합니다.
성운 대사의 불광사 탐방
지난 주에는 대만의 학회에 다녀왔습니다. “동아시아 근세 세계관의 형성”이라는 주제로, 불교와 노장, 그리고 주자학을 한 자리에서 논하는 세계 학자들의 학문적 친교적 잔치였습니다. 처음 해 보는 엉터리 중국어 발음이 청중들을 심하게 고문(?)했을 것입니다. 제가 다룬 주제는 노장과 불교, 그리고 주자학 사이의 삼각관계였습니다. 셋을 비교한 다음, 저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미래는 주자학의 유위(有爲)의 길보다, 노장과 불교의 비억압적이고 다문화적이고 관용적인 무위(無爲)의 기획에 편들지 모른다. 당신은 어느쪽인가.”
이틀간의 학회를 마치고, 그 곳 절을 두 군데 들렀습니다. 처음 간 곳이 승천선사(承天禪寺)였는데, 일요일 아침 수많은 신도들이 산사로 향하는 골목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문 앞에 서 있던 안내자는 혼잡해서 분실의 우려가 있으니 신발을 들고 들어가라 하고, 제 옆의 교수는 “누가 갖고 가겠소. 그냥 두고 갑시다”라고 해서, 저는 잠시 갈등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신발을 들고 들어가다가, 다시 나와서 신발장 틈에 밀어 넣었습니다. 인간사, 마음 내려놓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천정에는 ‘지장법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모두들 소리를 모아 독송하고 있는 중인데, 소리는 좀 다르지만, 그건 틀림없는 ‘천수경’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주지 스님과의 점심 약속은 너무 혼잡하고 경황이 없어서 두고 나와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불광사(佛光寺)였습니다. 현대식이 가미된 웅장한 가람이었는데, 저는 그 규모에 놀랐습니다. 성운 스님의 법문을 직접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스님께서는 세계를 누비며 포교하고 계시느라 지금 아니 계시다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프리카에도 법의 바퀴 소리가
실망한 얼굴로 대웅전의 옥부처님께 참배하고 법당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검은 얼굴로 승복을 입은 청년 둘이 눈에 띄었습니다. 인도인들 같지는 않고, 동남아시아에서 온 스님들치고는 너무 얼굴색이 검었습니다. 말을 붙여 보았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이며, 짐바브웨였던가요, 거기서 불법을 배우러 왔다고 했습니다. 아니, 아프리카까지?
저는 물었습니다. “그곳의 종교는 기독교 아니면, 이슬람이라고 들었는데, 어째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소?.” “평화의 복음! 처음, 포교사들이 왔을 때, 사람들은 그 기이한 예배와 낯선 독송 소리를 웃고 놀렸지만, 조금씩 불교의 비폭력과 공존, 관용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들은 바로 그 가르침을 더욱 깊이 알고, 또 전파하기 위해서 이곳에 와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청년들은 아프리카에서 불교가 아직 미미한 소수이지만, 전쟁과 혼란, 그리고 종교간 대립이 일상화된 그곳에서 불교의 목소리가 점점 크게 울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사람을 만나야
역시 불교는 그 무규정적 접근으로 하여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인종과 종교, 계급과 문화의 차이를 건너 뛰어, 사람들의 마음 깊이 스며듭니다.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는 우리는 ‘최소한’만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나 유교는 너무 ‘많이’ 공통 기반을 가져줄 것을 전제합니다. 이 요구량이 클수록 대화는 어렵습니다. 주자학이 좀 그렇지요. 저는 주자학의 근본 가치를 아끼는 사람이지만, 거기 설정된 관계의 시맨틱스(semantics·의미론)는 대폭 뜯어고쳐야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광사를 나오며, 그곳 서점에서 중국어번역판 <대승기신론>과 법장의 <화엄금사자장>, 그리고 규봉의 <화엄원인론>을 골랐습니다. 무엇보다 성운대사의 회갑기념으로 출간된 불광대사전 CD를 집어들고 뿌듯해 했습니다. 들인 공력에 비해, 유용성에 비해, 그 디지털 사전은 너무 쌌던 것이지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