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의 성지라고 알려져 있는 천진암(天眞庵)에 가서 변기영 신부를 만났을 때다. 천진암에서 찍은 홍보물에 불교에 대해서 잘못 표기한 것이 있어서 바로잡기를 요구하러 갔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자기는 천주교인이지만 1년에 한번 정도는 인도에 간다며 나보고 인도를 몇 번이나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말을 하고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 마음속으로 빠른 시일 안에 가보겠다는 원을 세웠는데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가 버렸다.
바쁜 법회활동으로 성지 순례를 많이 못하지만 불교방송이나 불교텔레비전에서 사찰순례를 가자고 하면 말없이 따라 나선다. 가는 도중에 사찰의 구조와 역사 및 불교의 기본 교리 등에 관해서 차를 갈아타면서 설명해주고 사찰에 가서도 아는 대로 전각의 구조나 가람배치와 스님이야기를 해주면 신도들이 매우 즐거워하였다. 사찰순례를 가 보면 사찰기둥마다 게송을 적어놓은 주련(柱聯)이 있고, 법당의 뒷벽에는 부처님의 일생이나 소의 발자국부터 뒤꽁무니 뿐 아니라 소를 잡아탄 소년 그리고 색깔이 하얗게 변하는 소 그림 등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선종(禪宗)의 마음 찾는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그려 놓은 그림인 십우도(十牛圖)또는 심우도(尋牛圖)이다.
마음을 소에 비유하여 찾아가서 자기 것으로 하고 나중에는 아무것도 안보이거나 사람들이 많은 시장 속으로 들어가는 그림이 있다.
심우도의 마지막 그림 같은 스님이 바로 법철(法哲) 스님이다. 스님은 나의 사제다. 운산 스님을 모시고 정릉 천중사에서 같이 살았다. 은사스님을 회주로 모시고 내가 주지랍시고 살림을 맡고, 법철 스님과 사숙인 도종 스님과 다른 사제 둘 그리고 지금은 출가해 수행을 열심히 하고 있는 지경 법사 등 제법 많은 식구가 한솥밥을 먹고 있었다. 말이 주지이지 태고종 총무원 일이나 밖으로 경불련, 불교레크리에이션포교회, 성북구 사암연합회 등 걸린 일이 많아서 많이 나가 도는 경향이 있을 것 같은 나를 배려해서 사제들이 일을 나누어 맡아주었다.
그 중에서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솜덩이같이 피곤해서 새빨간 눈을 하고서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가지고도 예불에 빠지지 않았던 법철 스님이야말로 든든한 기둥이었다.
학교에서의 모임을 파하고 들어온 시간이 열두시이건 새로 한시이건 꼭 예불을 모셨다. 처음에 내가 소임을 맡게 되자 “나 못박아 놓고 돌아다니려고 하지요?”하고 우스개 소리를 하였다.
나는 우스개 소리인줄 알면서도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절대로 내가 예불하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니까 마음 놓고 스스로를 위해서 예불하시게. 나도 백암 스님께 배운 것이 있네.” 예불을 지극히 여기는 마음은 태고종 종정을 역임하신 백암(栢巖) 스님께 배운 적이 있었다. 성북동 태고사에서 모시고 살 때 백암 스님은 우리들이 한 번이라도 예불을 빼먹을라치면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나 근엄하게 타이르셨다.
“중이 예불 한 번 빠지면 머슴이 쌀 한가마니 불태워 없애버린 것과 같다. 단 세 번 절을 하더라도, 선사들이 죽비 세 번 치더라도 빠지지 말아야 한다.”
법철 스님은 절에 살기는 했지만 낮에는 중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정식 교사였다. 천중사는 도심속의 사찰이기는 해도 산에 자리하고 있어서 도량석 목탁이나 종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는 흔치 않은 사찰이다. 도량석을 내가 하면 종성을 법철 스님이 하고, 도량석을 그가 하면 종성을 내가 했다. 장중한 음색인 나의 그것에 비해 법철 스님의 종성은 전통적인 음색의 비탄조라 마음의 울림이 컸다. 종마치 울리는 것부터가 정말 남다르게 제대로 배운 느낌이 들었다.
출가 수행자로서 여러 가지 추억이 있겠지만 달빛이 시리게 들어오는 법당에 앉아 종마치를 치면서 장엄염불을 청아하게 하는 맛이야말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장엄염불은 시식에서 주로 많이 쓰기 때문에 슬픈 곡조로 하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시지만 나는 그 내용이 장중하고 깨달음의 소식을 담은 것이기에 힘 있게 하고 있지만 법철 스님은 어른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계속)
이번 호부터 ‘스님이야기’를 연재하는 법현 스님은 중앙대 기계과를 나와 1985년 운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국대 불교학 석사학위를 받고 태고종 교무·총무부장, 종단협의회 사무국장, 동방불교대 교학처장, 경불련 공동대표, 정릉 천중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고종 교무부장, 관악산 자운암 상임법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