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하는 이웃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자비의 전화 상담이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사사로운 개인 감정이야기에서 가정, 직장, 사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로 아파하는 중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아파하며 슬픔을 나누는 것이 기쁘기만 합니다.”
1990년 개설된 ‘자비의 전화’에서 14년 동안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있는 서울 인과선원 주지 정덕 스님.
전화벨만 울리면 자다가도 일어나 사연을 듣는다는 스님의 말씀에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1933년 부산에서 태어난 스님은 젊은 시절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유교를 비롯해 도교, 기독교, 한의학 등 안해본 공부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불교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그 해답의 실마리를 얻은 스님은 은사스님인 대영 스님 문하에서 10여년을 행자로 수행에 매진했다.
1979년 해인사 일타 스님을 은사로 사미니계를, 82년 범어사에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이후 수덕사 견성암 등 전국 제방에서 안거를 성만했다.
정덕 스님에게는 ‘실천하는 수행자’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다닌다. 자비의 전화가 확대 개편된 불교상담개발원의 수장을 맡아 부처님 말씀으로 중생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있고 입적하신 혜춘 스님을 모시고 비구니 위상 정립을 위해 시작한 전국비구니회 활동도 벌써 20년째다.
광우스님이 회장하던 시절에는 사회부장으로 8년동안 회관 건립 등에 전국비구니회의 주요 현안들을 임원 스님들과 합심하여 현실화시켰고 지금은 부회장 소임을 맡아 후학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또한 불교 환경운동 단체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공동대표로 수행환경 지킴이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외에도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 조계종 불교여성개발원 특별자문위원 등을 맡으며 시민단체 활동가로 부처님 법의 사회화에 힘쓰고 있다. 노원구 경승, 맹호부대 군법당 건립 지원 및 군 장병 위문 등 소외 계층에 불교를 알리는데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바깥활동이 많아 사찰을 자주 비웁니다. 상좌들과 신도들에게 미안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알리기 위한 일이기에 몸은 힘들고 항상 시간에 쫓겨 살지만 보람을 느낍니다.”
정덕 스님은 최근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펼치고 있다. 미륵사 창건이 바로 그것.
서울 월계동에 인과선원을 창건, 도심 포교에 전력하면서 스님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위안이 되어 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래서 충남 금산에 부지를 매입하고 본격적인 미륵사 불사를 시작했다.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 하지만 스님은 미륵 부처님의 도량을 완성하는 것을 이 생의 마직만 서원이라며 연신 천진스런 웃음을 내 보이신다. 김두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