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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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새 코드 ‘봉사’-구승회(독일 레겐스부르크 교환교수)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도 기부와 봉사가 일반화되고 있다. 학교는 봉사활동을 의무화하고 성적에 반영하기도 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군인과 종교단체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인력 동원이 용이한 집단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재화의 기부와 용역의 봉사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자본주의적 분배양식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등장한 제3부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행정적, 관료적 시스템 밖에 있는 자발성에 기반한 도덕적 활동이다. 이를 제도화, 체계화하려는 시도는 기부는 조세가 되고, 봉사는 강제노역이 되고, 이를테면 복지행정 관료의 수와 복지의 수혜자 수가 맞먹는 복지의 비대를 낳는다. 그러므로 이는 체제와 효율성으로 잴 수 없는 자율성의 영역이다.
절대 왕권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오직 관료 집단만이, 시장이 낙후되어 있고 관료세계 이외에 어떤 합리적인 조직도 없는 사회에서는 군대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기업이 가장 큰 역동성을 갖는 집단이 된다.
기업은 관료세계에 비해 지식 엘리트의 순환이 빠르기 때문에, 가장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집단이다. 정보수집 능력, 단기적 미래 예측 기술, 비용효과 분석 기술의 측면에서 기업을 능가하는 집단은 없다. 이런 엘리트 집단인 기업은 지금껏 이윤과 효율성의 극대화라는 원초적인 목표에만 주목한 나머지, 심지어는 이웃의 가난, 대규모 자연재해, 국가적인 위기마저도 ‘또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해 왔다. 마치 개혁에는 관심이 없고, ‘개혁이라는 아우라’를 이벤트 상품화하는 굶주린 이리떼들처럼.
오늘날 환경문제, 정보화, 세계화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바꾸고 있다. 변화된 생산양식 하에서 기업의 목표는 이윤의 최대화가 아닌 최적화에 맞춰진다.
적정 이윤이라는 의미, 즉 효율성, 생산성에 기초한 최적화가 아니라, 기업의 역동성을 지역사회에 풀어냄으로써 경직성을 탈피하고, 다양성, 유연성을 통한 기업 가치의 최적화를 말한다. 기업의 지역사회 봉사는 참여의 문화를 만들고, 이는 다원주의적 기업문화로 이어져 변화무쌍한 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요소가 된다.
생산력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투자하는 가장 유력한 분야는 지역 환경봉사일 것이다. 환경문제는 계층과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인 관심사이고, 기업 활동은 반환경적이라는 적대적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환경봉사는 이런 대립 구도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기업이 친환경적인 소비 패턴을 기업 활동에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차원이 아니라, 지역의 생활환경에 직접 참여해서 친환경적인 생산-소비 관계를 정립하는 ‘21세기형 기업 모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봉사는 계몽적 성격의 시민운동, 혹은 예를 들어 ‘녹색 소비주의’를 홍보함으로써 ‘친환경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광고하는 차원이어서는 안된다. 기업의 서비스를 수혜받는 현명한 소비자는 물총으로 산불을 끄려는 시도처럼 무의미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기업의 지역봉사는 이윤추구 활동도, 대외 이미지 제고를 위한 활동도, 지역사회에 시혜를 베푸는 것도 아니다. 이는 업의 내부 역량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서, 판매실적, 어학능력과 동일한 직무능력을 평가하는 요소로 이해할 때, 타인을 위한 봉사 그 자체가 지향하는 나눔의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200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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