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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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 스님의 스님이야기-삼봉 스님/해인사 원당암
해인사는 지금 여름 안거중이다. 안거기간동안에는 산중의 모든 대중이 일주일동안 함께 참여하는 철야 용맹정진을 한다. 음력 7월 1일 새벽 3시부터 시작해서 8일 새벽 3시에 마친다. 외호하는 대중들만 빼고는 모두 참석해야 한다.
행자실은 야식거리로 잘 다듬어진 잣을 정성스레 씻은 뒤에 쌀과 함께 죽을 끓여서 밤 시간에 잣죽을 올린다. 선원에는 간경에 몰두하는 강원 학인들까지 모두 올라와서 세상의 이치와 마음의 관계를 풀어서 뭇 중생들에게 회향하고자 마음 교정 작업에 여념이 없다.
강원에서 제일 아랫반인 치문반은 해인사에서의 일주일 철야 용맹정진이 처음이므로 삼천배를 한 뒤 방장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선원에서 용맹정진이 허락되기 때문이다. 말이 삼천배지 삼복더위에 삼천배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 쉬운 일은 아니다. 삼천배를 하는 까닭은 화두를 간절하게 챙기고, 일주일 동안의 용맹정진을 신심으로 가득 채워서, 철야 용맹정진이 원만하게 회향되어야 하는 목적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4학년인 경반때까지 매번 삼천배를 아랫반과 함께 하면서 손수 죽비를 치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 스님이 삼봉 스님이다. 삼봉 스님의 본래 법명은 ‘대성’이다. 성격이 원만하고 스스로 하심(下心)을 하고 상대를 배려하므로 도반뿐만 아니라 위·아랫반에서 모두 좋아했다. 그래서 별명이 많았는데, 여러 가지 별명 가운데서 삼봉이라는 명칭으로 자연스럽게 정착되어서 지금은 삼봉 스님으로 불리고 있다. 삼봉 스님 자신도 구태여 이름에 마음이 끄달릴 필요가 없다는 듯한 태도이니 달리 부르는 이름이 많기도 했다.
스님이 곁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삼봉이라는 이름만 생각해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돌만큼 스님은 주변사람들을 편하고 하고 재미있게 한다. 강원에서는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는 삼경 전에 간경을 끝낸 뒤 큰방 청소를 간단하게 마친 다음 자리를 편다. 자리를 펴고 나서는 삼경까지 십분 동안 좌선을 한다. 이때 분위기가 좋으면 하늘같은 입승스님의 재량으로 반에서 한명씩 노래를 하는데, 우리 반 대표는 아랫반 시절부터 항상 삼봉 스님이 맡아서 해왔다. 노래 곡명도 항상 같은 ‘호동왕자’ 다. 대중들은 삼봉 스님이 나와서 애절한 목소리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연을 노래로 듣는데, 목소리도 간절하지만 표정 또한 노래 사연만큼이나 다양했다. 그런 삼봉 스님을 대중들이 좋아했다.
삼봉 스님은 출가하기전 연기지망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얼굴표정도 풍부하고, 세상살이를 배우가 연기하듯, 무위심으로 마음을 내 듯 탐욕없이 살아가고 있다. 세상을 욕심 없이 산다는 게 승속을 불문하고 쉬운 일인가.
나는 삼봉 스님이 주지로 있는 고성 약수암에 가끔 들러서 절 이름과 걸맞은 좋은 약수 맛을 보곤 한다. 약수암은 고성에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데, 그 좋은 약수(藥水) 때문에 이름이 약수암이다. 물이 좋기로 이름이 알려져서 고성뿐만 아니라 인근의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기도하고 정진하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도량은 터도 좋지만 이렇게 물맛도 좋은 법이다.
이 좋은 도량을 삼봉 스님의 모친이 창건해서 삼봉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농촌포교에 탄력을 받고 있을 즈음에 우리들은 아직 제방에서 경학을 참구하거나 선원에서 정진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삼봉 스님은 농촌포교에 일찍 뛰어든 경우다. 강원을 졸업한 뒤에 주지 하는 사람이 없으니 동창회를 해인사에서 하다가 삼봉 스님이 주지로 있는 약수암에서 했는데, 삼십명 가까운 대중을 수용할 만큼 도량이 넓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모임 다음날에는 신도들 실어 나르는 버스로 거제 해금강까지 태우고 가서는 유람선으로 한려수도를 마음과 눈으로 만끽하게 했다.
이 좋은 도량 약수암이, 삼봉 스님은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여린 마음때문에 재정보증을 잘못 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처지에 있다. 처음에는 그 고통스러움을 참지못해 이빨이 솟구치기도 하는 아픔이 있었으나 지금은 예전의 위트와 평온함을 되찾고 정진하고 있다.
스님은 오라는 곳은 많이 없어도 간절한 목소리 하나 가지고 어디든 거리낌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 모습이 나로서는 편안한 도반을 옆에 두고 있다고 생각이 들게 한다. 힘들 때는 서로 의지도 한다. 그래서 나는 삼봉 스님을 만나거나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고 즐겁다. 삼봉 스님의 칼칼한 목소리와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얼굴이 갑자기 보고 싶다.
200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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