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재보존학회가 서울, 충남·북 지역의 석조문화재를 조사한 결과는 놀랍다. 풍화, 생물, 구조 등 3개 분야에서 5등급 위험판정을 받은 문화재는 서산 마애불을 비롯해 부여 정림사터 오층석탑,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 무량사 오층석탑 등 무려 23건이라 한다. 이들은국보 또는 보물 등으로 지정된 국가의 중요한 문화재여서 심각성을 더해준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주무기관인 문화재청이 올 봄 서산 마애삼존불과 정림사지오층석탑 등 4곳을 정밀진단 대상으로 정했지만 실행에 들어간 문화재는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 언론이 서산 마애삼존불의 현장조사 결과를 집중보도하며 “암석풍화, 절리, 염분, 산성비 등 외부환경에 따른 파괴가 심각한 만큼 신속한 정밀진단으로 구체적인 훼손원인을 빨리 찾아내어 보호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보고서 내용을 서산시에 통보해 정밀조사 진단에 필요한 예산을 신청하도록 했으며 국회 통과, 지자체 예산배정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일러도 내년 봄 이전에는 조사가 어렵다”고 밝혔다가 비난여론이 쏟아지자 그때서야 연내 조사를 벌여 대책을 세우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정밀진단 조사를 하는데도 이럴진대 정작 보존대책을 마련해 실행하기까지는 또 얼마만큼의 시간과 지적이 뒤따라야 할 것인가. 그 사이 해당 문화재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요즘 어느분야에서나 개혁과 혁신을 말하는 소리가 높다. 시급을 가리지 않고 절차만을 따지는 정부의 태도야 말로 개혁과 혁신의 대상이다.
문화재청의 예산집행은 특례를 세워 긴급한 경우 먼저 집행하고 추후 결산하는 등 법규를 정비해야 한다. 나아가 문화재 보존을 위한 긴급한 경우를 대비한 문화재보존기금을 조성하거나 특별법인을 설립할 것을 제안한다. 문화재청이 ‘외청’으로 승격한 만큼 문화재보존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지청을 두는 문제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훼손되어 가는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이 형식적인 외청 승격으로 감춰질 사안은 절대 아니다. 정부가 보다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문화재 보전책을 제시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