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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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과 ‘과거사’의 순서/송일호(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적 불황과 사회갈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 탄핵정국과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 등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갈등을 키워오더니 이제 과거사 청산 문제까지 겹쳐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 와중에 여당의장의 부친에 대한 친일행적이 밝혀지면서 정국은 더욱 혼미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과거사 청산 문제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세우고 정체성과 정통성을 확립하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외면해선 안될 중요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독립투사 보다 일제의 앞잡이가 대를 이어 활개를 치고, 독재정권의 타도를 외치며 고초를 겪었던 민주투사 보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양심을 버리고 세상이 바뀌어도 변신을 거듭하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로 우리 사회가 채워진다면 우리의 미래는 정말로 참담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의 청산작업이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기준 아래 진행되어야지 자기 자신의 조상이 저지른 잘못은 그냥 넘어가고, 남의 조상의 잘못만 부각시키는 방식의 과거사 청산은 또 한번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 또한 과거사 청산문제가 보수와 진보의 대립적 시각에서 흑백논리에 의해 진행된다면 영원히 청산될 수 없는 과제로 남고 말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정략적인 접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여기에 불안한 정치권으로 말미암아 경제적 상황은 이미 우려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작금의 경제상황은 IMF 위기 때보다 체감경기가 나쁘다는 말이 벌써 몇 년 째 들릴 만큼 심각하다. 특히 소비가 위축되고 투자심리 역시 얼어붙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점은 국민들을 더욱 절망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개인파산이 급증하고 있으며 중산층이 무너진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기업이 사람을 채용하지 않아 청년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공장들이 이 땅을 떠나 해외로 이주를 하고 있고 외국기업들은 우리나라에 현지투자를 하길 꺼려하고 있다.
경기가 활성화되려면 유효수요가 먼저 진작되어야 하는데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확실하거나 비관적이면 모든 것이 얼어붙어 경기는 더욱 침체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정치권은 이러한 경제적 상황마저도 서로 네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던져진 과거사 청산과 경제살리기는 사실 성격이 서로 다른 주제다. 과거사를 정리함으로써 그동안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던 모순구조를 타파하자는 것과 경제 불황을 극복하자는 문제는 우선순위를 따질 수 없는 지상과제임에 틀림없다.
핵심은 어떻게 이 두 문제를 푸는가 하는 방법의 차이에 있다. 과거사의 청산작업이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기준 아래 진행된다면 여든 야든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여야간에 실종되었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의 회복이야말로 우리 경제를 살리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저신뢰사회에 살고 있다. 남과 북이, 여당과 야당이, 그리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서로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후꾸야마라는 학자는 한국이 외환위기가 초래된 이유를 저신뢰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뢰의 회복은 생산성을 증진시키고 궁극적으로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정치권이 앞장서서 서로 간에 실종되었던 신뢰를 구축한다면 과거사 청산문제와 경제회복이라는 두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 문제들을 극복했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는 한층 더 성숙해 질 수 있을 것이다.
200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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