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스님인 혜암 스님은 평생 동안 수행자적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수행자의 근본물음에 충실한 삶을 사셨다. 행자시절부터 장좌불와(長坐不臥)를 남이 잠자듯 하고, 남들이 끼니때마다 밥 먹듯 단식을 하셨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든다는 것은 중생의 삶이 덧없음을 이미 체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칼날 같은 선풍(禪風)의 스님에게 한 앳된 고등학생이 한 수 가르침을 받겠다고 찾아왔다. 혜암 스님이 지리산에서 일대사 공부하던 시절은 가히 범인들은 흉내 내지 못할 만큼 엄격하고 철저한 수행을 했던 시절이었다.
스님은 “사찰 주지등 소임을 사는 것과 상좌를 받는 행위는 공부에 방해만 될 뿐이다. 오히려 지옥에 가기가 훨씬 쉬우니 출가 전부터 상좌 받지 않고 주지를 하지 않기로 맹세를 하고 사문의 길로 들어왔다.” 고 처음엔 거절하셨다. 그래도 그 학생과 사좌(師佐)의 인연이 지중했든지, 인곡 노스님부터 시봉을 해온 광명화 불자가 적극 거들어서 결국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게 되었다.
이때부터 원각 스님은 스님을 곁에서 모시면서 두타납자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행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 혜암 스님은 두타납자라는 말듣기를 참으로 좋아하셨다. 하늘만 가릴 수 있다면 좌복 하나로 일대사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니 시봉하는 사람도 웬만한 신심으로는 버텨내지 못했다.
해인사가 자리 잡고 있는 가야산 중턱에 혜암 스님이 중봉암 이라는 토굴을 짓고 사실 때였다. 스님은 해가 떠 있을 때에는 정진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야할 때면 꼭 밤길을 다니셨다. 이유는 간단했다. “깜깜한 밤에 달조차 뜨지 않는 날이면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숲인지 식별하기도 힘들다. 육안으로는 캄캄한 것만 보일뿐이다. 세상의 이치도 이러한데 하물며 마음을 닦지 않거나 깨치지 않고서는 어둠속을 헤맬 뿐이다. 천금과 같은 인생을 미혹에서 헤매다 가는 허무한 삶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책하기 위해서 밤길에 장을 나서는 것이다.”고 하셨다. 이렇게 잠시도 빈틈없이 마음을 다잡는 스님을 시봉하는 일이 마음닦는 공부 하는 것 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다. 내 마음의 그릇은 사실 본인인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런 면에서 원각 스님은 마음이라는 그릇이 갖춰진 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원각 스님은 은사스님으로부터 수행의 가풍을 그대로 이어 받고 제방의 선원에서 정진했다. 선원에서 입승 소임을 맡아서 대중을 이끌어 나갈 때에도 스님의 성품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한철을 보냈다. “대중이 모여서 공부하는 것은 호통을 친다거나, 모이란다고 모여서 공부하는 타율적인 집단이 아니므로 자연스럽게 알아서들 공부해야 저절로 공부가 된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원각 스님은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어져야 하며 또 몸소 그렇게 되도록 실천한다.
마음공부로 기초를 닦은 뒤에는 거창 가조의 고견사에서 기도와 포교로 부처님의 말씀과 사상을 지역민에게 알리는 주지소임도 맡아서 해보았다. 조석 예불과 사시기도까지 몸소 꾸준하게 하니 자동차도 올라오지 못하는 교통이 불편한 곳인데도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신도계층도 다양했다. 그 까닭은 젊은 사람들에겐 그들에게 맞게, 할머니들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친절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시골 할머니들은 부처님오신날이나 백중 등 사찰의 큰 행사가 있을 때에는 절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도회지에서 온 사람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작아도 각방을 원하는데 반해서 할머니들은 큰방에서 도란도란 얘기하다가 한방에서 잠들기를 원한다. 그래서 원각 스님은 도회지 사람들의 불편함을 알면서도, 시골 할머니들의 취향대로 큰방을 사용했다. 또 웬만한 먹을 거리는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무나 배추농사를 잘 지어야 하는데 원각 스님은 농사짓기에도 능한 솜씨를 보인다.
스님은 모든 일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리며 풀어간다. 일도양단의 쾌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신중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널리 화합을 생각하며 무리 없이 일을 해나간다. 지금은 거대한 살림이 되어버린 해인사 원당암의 감원으로서 혜암문도회의 가풍을 이어가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깊은 강은 소리 없이 흐르는 것처럼 스님 또한 말없이 실천으로 안과 밖을 두루 이끌어 가고 있다. 소리와 말이 없어도 시간은 세월이 되고, 자연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 없는 가운데 스님의 가풍이 저절로 익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해인사 원당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