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법을 밝히 깨달으신 부처님의 안목에서 볼 때는 세상의 온갖 존재는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의 무명과 망상을 따라 나타난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인 까닭에 있는 것 같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실체가 없는 거짓된 존재들입니다. 이것을 대승의 불교에서는 공(空)이라고 합니다. 존재하는 것 같으나 그 본질은 모두 비어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공관법(空觀法)이란 이미 대승의 선정에서 말했듯 자신과 세계의 근원인 마음을 관찰하여, 일체를 진실되게 있다고 보지 않고 공하다고 보는 공부법입니다. 이 공관법을 다른 표현으로는 허망관(虛妄觀)이라고도 하고 환관(幻觀)이라고도 하며 무상관(無常觀)이라고도 합니다. 허망관이란 모든 것을 보되 헛되고 망령된 것으로 관찰하는 법이고, 무상관이란 일체의 모습이 본래는 모습이랄 게 없는 것으로 관찰하는 법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금강경>의 공관법을 수행하는 방법과 그 과정들에 대하여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관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게송,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헛되고 거짓되어 진실이 아니다. 만약에 모든 상들을 접하더라도 그 상들이 진실한 상이 아니라고 보면, 곧바로 부처님을 본다”는 설법을 잘 이해하고 파악하여 마음에 깊이 새기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 다음에 이제부터 이 게송 가운데 특히 앞의 두 구절인 ‘범소유상 개시허망’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합니다. 사구게중 뒷구절인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를 생략하고 ‘범소유상 개시허망’만 하는 이유는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임을 관하는 것이 곧 ‘약견제상비상’을 실천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즉견여래’는 자동적으로 얻어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관법 공부는 만법의 근원인 마음을 직접적으로 들여다보고 그 마음의 속성과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들어가는 공부임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마음을 본다고 할 때 어떤 마음을 어떻게 보느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대답하기 전에 불교에서는 마음을 논할 때 누구나 지니고 있는 마음에는 본래부터 두 가지 속성이 있는 깨달음과 지혜로써의 진여심 즉 여래심입니다. 수행의 목적이 중생심을 버리고 진여심을 얻으려는 데 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습니다. 따라서 관법 공부의 목적은 번뇌와 무지로서의 중생심과 깨달음과 지혜로서의 진여심 모두를 보는 것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관법 공부는 바로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일차적으로는 번뇌와 무지로서의 중생심을 우선 보는 공부를 통하여 최종적으로 지혜로서의 진여심을 보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푸른 하늘에 검은 구름이 끼어 있다고 할 때, 푸른 허공을 보려면 검은 구름을 보다 보면 검은 구름이 사라질 때 푸른 허공을 볼 수 있듯, 관법 공부도 일단은 번뇌와 무지의 마음을 봄으로써 최종적으로 지혜와 깨달음까지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유마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