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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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묘관 스님
“만족 알고 치우치지 마라”

“지족상락(知足常樂) 능인자안(能忍自安), 만족할줄 아는 사람은 항상 즐거우며, 능히 참으면 스스로 평안한 법이랍니다.”
해인사 약수암 묘관 스님(세수 69세·사진)은 아침부터 달려가 한 말씀 청하는 기자를 뿌리치지 못하고 자상하게 ‘혹 못 알아들을까’ 또박또박 풀어 마음법을 얘기해줬다. 또 “중생이니 중생심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오래 가지지 말고 빨리 버릴 줄 알아야 한다”며 평상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신다. 요즘 사람들은 욕심과 다툼 때문에 세상을 이토록 어지럽게 한다며 걱정하셨다.
특히 스님은 선지식들의 그 어떤 말보다 만족할줄 아는 삶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뭘 하든 만족할줄 알고, 참을 줄 알면 내가 행복하고 편안한 것처럼 내가 만족하지 못하고 불편해 하면 다른 사람도 불안한 법”이라는 것이다.
1936년 김천에서 태어난 묘관 스님은 어린 시절부터 속가 이모인 정인 스님을 쫓아 해인사 약수암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다 46년에 정인 스님을 은사로 동진출가했다. 그 때가 11살. “어린나이에 나쁘진 않았으니 출가를 했겠지”라며 남의 말 하듯 출가당시를 회고 했다. 50년에 해인사 인곡 스님에게 사미니계, 63년 자운 스님에게 비구니계를 받았다.
62년 지관 스님이 해인사강원 강주로 있을 때 경을 배우고 해인사 대교과를 졸업한 스님은 35년 전 약수암에 죽림선원이 생길 때까지 많은 큰스님들로부터 경을 두루 배웠다. 선방이 생긴 후에는 결제철마다 빠지지 않고 정진했다.
묘관 스님은 경학과 실참을 두루 겸비한 선객으로 고희를 바라보는 요즘도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새벽예불을 올리고 밤 10시까지 죽림선원 젊은 수좌들과 함께 하루 4번 입선에 든다.
60년대 제대로 된 비구니강원이 생기기 전까지 스님은 해인사 보현암, 삼선암, 국일암 등의 사미니들 앞에서 강(講)을 섰다.
스님은 요즘도 매일 오후 2시면 약수암 행자들에게 1시간씩 <초발심자경문>을 가르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스님은 행자들에게 경을 가르칠 때 “경만 따로 보지 말라”고 하신다. 선지식이 경을 쓸 때 가졌던 마음을 짐작해, 내 것같이 여기는 ‘실천행’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스님은 “아무리 오랜 시간 경을 읽고 외운다 해도 내 것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덧붙이신다.
“그저 약수암에 비구니가 하나 살고 있다면 그 뿐이지, 할 말이 뭐가 더 있느냐”는 스님의 첫 마디처럼 스님은 결코 ‘나’라는 ‘색’도 ‘향’도 없이 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이 밖의 일에 전혀 무관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91년부터 약 10년간 비구니계단의 도감과 행자교육 도감을 맡기도 했을 정도로 종단에서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두말없이 앞장서는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또 전국비구니회가 자리를 잡기 전 영남지역 비구니 스님들의 화합을 위한 활동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었다.
오랫동안 묘관 스님을 모셔온 시자스님은 “노스님은 부드럽고 자애롭지만 나 같은 (번뇌가 많은) 사람도 이렇게 바꿔가며 데리고 살만큼 넉넉한 아량을 가지신 분”이라는 말로 스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배지선 기자
200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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