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사하구에 있는 당리동 관음사는 법회 때마다 수백 명이 모이는 모범적인 포교도량이다. 이십 년 전만 해도 법당 한 채와 요사 채 한 동, 허름한 식당 한 채가 전부였다. 지금의 관음사는 도량의 모습이 환골탈태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싶을 만큼 면모가 일신되었다.
관음사 주지 지현 스님은 똑같은 공간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스님이다. 말보다는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결과 스님이 사재를 털어서 인수한 관음사는 하루가 다르게 신도들의 호응을 얻으며 활발함을 더해갔다.
지현 스님 곁에는 항상 사람들로 넘쳐난다. 우리가 들어도 잘하는 염불이 아닌데도 신도가 넘치는 것은 지현 스님의 행과 신심을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스님은 남이 흉내내기 힘든 일상화된 원력과 부처님에 대한 투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부처님 뜻대로만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되는 일이 많을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해인사는 강원의 정규 일학년인 치문반에 입방하기 전, 사미율의 반을 두어서 사미가 익혀야 할 계율을 배우게 한다. 이때까지 제방의 선원에서 정진하던 지현 스님이 강원의 강사의 길로 접어든 첫 번째 길목에서 사미율의 반인 우리 반을 맡게 되었다. 지현 스님은 스스로에게는 참으로 엄격했지만 남에게는 한없는 자비심으로 대했다. 정말 말로만 들었던 ‘자비보살’을 날마다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사미율의 반인 우리 반은 고된 행자생활을 해인사에서 함께 했던 인연 때문에 동료애가 끈끈했다. 그래서 엉뚱한 일로도 곧잘 뭉치곤 했다. 지현 스님은, 우리가 그런 엉뚱한 일을 벌여도 아직 중물이 안 들고 철이 없어서 그러나 보다 하고, 어린애들 응석 받아주듯 잔잔한 미소로 넉넉하게 받아 주셨다.
결제철에 산문을 벗어나서 원행(遠行)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사미율의 진도가 잘 진행되다 보니 교과과정이 결제철에 마치게 되었다. 책 한 권을 마치게 되면 옛날의 서당처럼 강원에서는 ‘책걸이’ 라는 의식을 행한다. 무엇이든지 뭉치면 좋은 일인줄 알고 있는 철딱서니 없는 사미율의 반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낸 것이 부곡으로의 책걸이소풍이다. 그렇게 의견을 모으고 강사스님을 설득하기로 했다. 결제철의 소풍은 산문 안의 가야산 정상이나 산 중턱에 있는 마애불 참배가 관례였다.
그런데 지현 스님은 미리 알고나 있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오히려 우리들에게 반문했다. 부곡으로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갔다와서가 문제인데 그것을 철저하게, 다른 말이 안 나오게 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강사안거 기간인 결제철에 대중은 산문 밖 출입을 삼간다. 하지만 사미율의 반 전체가 스님과 함께 비록 당일치기지만 부곡으로 유쾌한 사미율의 책걸이를 다녀왔다. 물론 비밀은 철통같이 지켜졌고, 강사스님과 우리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사이를 넘어서 혈맹 관계로 인식되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위해서 이런 사고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해인사에는 유독 어른이 많았는데 지현 스님은 이 많은 어른들을 한결같이 깎듯하게 모셨다. 어른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생활화된 분이 바로 지현 스님이다.
지현 스님의 은사스님은 송광사 방장이신 보성스님이다. 어른들이 다 그렇지만 보성 스님도 모시기가 그리 만만한 분이 아닌데도 지현 스님은 어른스님을 당신 하시고 싶은 대로 편안하게 모신다. 그렇다고 무조건 순종하며 모신 것도 아닌데, 옆에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지현 스님은 일가족 다섯 분이 부처님 제자로 출가했다. 부친과 형제자매 다섯인데, 부친은 이미 입적하셨고, 형제들은 비구스님과 비구니스님으로 신분을 바꿔서 제방의 선원과 기도처에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행복한 삶은 지혜롭게 살 때 가능하고, 지혜는 바르게 살 때 성취된다고 했다.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삶은 청정함으로 가득하다. 지현 스님을 보고 있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것처럼 보인다. 번잡스럽지 않으면서, 번잡스러운 일을 기꺼이 해내는 스님의 원동력은 매사에 원칙을 준수하고, 기본에 충실한 수행력이 뒷받침 되어서 가능하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모든 것을 아우르니 관음사 포교뿐만 아니라 복지관, 장학재단 등 많은 일을 잘 해내고 연꽃처럼 초연한 삶이 지속되지 않나 싶다. 그런 일관된 원력이 부러울 뿐 아니라, 스님처럼 향기가 나는 수행자이고 싶다. ■ 해인사 원당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