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중생을 보되 부모와 같이 하라” <우바새계경>
희대의 연쇄살인범이 검거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인간 세상의 각박함에 몸서리친다. 나를 아끼듯 다른 생명을 아끼는 도리는 아주 간단하지만, 그것이 세상에 골고루 적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나를 아끼는 마음은 언제나 1순위이지만 다른 생명을 대하는 마음은 언제나 ‘나’ 다음에 놓여지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을 자신과 하나로 보고 부모처럼 공경하는 세상은 올 수 없는 것일까?
얼마전, 대학 입시를 앞둔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학교가 특정한 예식에 강제적으로 참가시키는데 이의를 제기 했다가 제적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두고 불교계는 물론이고 기독교계에서도 학교 측의 처분이 지나치다고 비난해 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해당학교의 교목이 직위해제를 당했다. 학교 측의 제적 조치가 도를 넘어섰다고 지적한 까닭이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고구정녕 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차라리 배타적인 신앙이 옳다고 가르치는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 떳떳할 수 있지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지나친 배타성이 개신교의 본래 교의와 인식을 해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개신교의 배타성이 지속되는 한 지성사회의 눈총을 피해갈 길도 없을 것이라 믿고 있는 그의 결론은 ‘기독교 의식 개혁 운동’의 필요성으로 닿고 있다.
종교는 종교 바깥을 향해 문을 열어야 한다. 불교는 ‘자타불이’의 가르침으로 철저한 상생의 삶을 가르치고 있다. 문제는 어느 종교든 그 가르침의 본의를 얼마나 바르게 실천하여 인간 세상의 ‘오늘’을 가꾸어 가느냐에 있겠다.
■임연태(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