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 사려깊고 따뜻
뭐든 맡으면 쉽게 ‘척척’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울타리를 쳐 놓고서 그 곳을 벗어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착각하고 산다는 것이다. 우물 안에서 보이는 하늘은 꼭 우물 크기만큼이다. 더 넓고 활기에 찬 다른 세상이 있음을 모른다. 우리는 대부분 본인이 만든 울타리안에 안주하고 싶어하고, 그 곳을 벗어나는 것을 불안해한다. 그리고 또 단체나 개인을 불문하고 소유하고 있는 것은 더욱 더 굳건하게 지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가진 사람은 있는 것을 지키고 싶어하고, 그렇지 못하거나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란 이미 부처님께서 말씀해 놓으신 바다. 그 변화는 나의 이익만을 위해서는 안된다. 너와 내가 함께 잘 되기 위한 변화를 요구해야 하며, 자기 자신도 끊임없는 변화를 위해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사는 스님이 영석 스님이다.
영석 스님은 포교원 연구실 사무국장 소임을 맡기로 내정이 되었다. 그래서 포교원장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면접도 겸해서 포교원의 칸막이된 회의실에서 원장스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즈음에는 신도국장도 공석이어서 사무국장과 신도국장을 어느 스님이 맡느냐로 의견이 분분하던 때였다.
나는 영석 스님이 누구인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회의실에서 원장스님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내가 “비구니 스님들은 한번 자리에 앉으면 오로지 왜 그 자리만 지키려고 하나?” 라고 말을 했는데 그 말 꺼내기가 무섭게 회의실에서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연구실 사무국장 소임을 새로 맡게 될 스님처럼 보였다.
아뿔사! 왠지 꺼림칙했다. 나중에 원장스님께 여쭈니, 한두 군데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천거한 실력있는 스님이라고 하셨다. 면접이 끝난 뒤 영석 스님이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어쨌든 영석 스님은 이제 우리 식구가 되었다.
그런데 보통의 사무국장이 아니었다. 요즈음 모두들 기본을 찾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바로 영석 스님이 기본이 아주 충실히 갖춰진 스님이었다. 사람을 추천한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닌데도 저 정도 되니까 많은 스님들이 다투어 천거를 했나보다 라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포교원에서는 안건을 처리해야 할 때 원장스님을 모시고, 차·과장까지 함께 회의를 한다. 그럴 때마다 영석 스님의 자세는 다소곳함과 함께 상대방이 편하게 느끼는 엷은 미소로 일관한다. 스님의 자세만 보고도 어른스님들이 “영석 스님은 어른을 많이 모셔 봤지요?”라고 할 정도다. 영석 스님은 요란을 떨지 않으면서 자기계발에 끊임없는 시간을 투자한다.
출가해서 은사스님 시봉하고 몇 번씩 시험을 봐야만 합격한다는 운문사 강원을 졸업한 뒤에도 동국대에 진학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렇다고 공부만 하는 것도 아니다. 대전 보문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교법사를 겸하면서 불교대학 강의도 하고 법회도 여기저기로 다니면서 포교에도 열심이다. 정말 눈코 뜰새 없을 만큼 바쁜 사람 가운데 하나다.
포교원에서도 책상자리에 앉았다 하면 볼 일 외에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이 없을 만큼 집중력과 성실로 뭉쳐진 수행자다. 크게 웃지도 않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 옆에 있어보면 배울 것이 참으로 많다.
영석 스님은 세속의 언니도 출가를 했는데, 같은 은사스님을 모신 사형사제지간이다. 영석 스님이 먼저 출가를 했는데, 출가한 동생을 잘 설득해서 집으로 데려갈 요량으로 언니가 절을 찾아 나섰다가 오히려 동생에게 설득당해서 덩달아 출가를 하게 되었다. 언니가 나중에 출가를 했으므로 동생의 사제가 되어야할 상황인데, 영석 스님이 언니보다 구족계를 뒤에 받음으로 해서 절집에서도 사형으로 모시고 살게 되었다. 동생의 사려깊음으로 해서 형님 자리를 승(僧), 속(俗)모두에서 온전하게 지켜주게 되었다.
이 일화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영석 스님은 매사에 사려가 깊다. 사려가 깊다 보면 대부분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기가 쉽지 않은데, 영석 스님은 무슨일이든 맡겨만 주면 쉽게 해 낸다.
포교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발행하는 <법회와 설법>의 설법 문안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좋은 설법문안을 만들어 낸다. 끊임없이 자기변화를 추구하는 스님의 성실과 근면에 존경과 찬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드러나진 않지만 알차게 수행하는 스님의 모습이 큰스님 부럽지 않게 느껴진다. ■해인사 원당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