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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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전북대 윤리과 교수 /공복의 구업
옛날에 술을 좋아한 왕이 생일을 맞이하여 신하들에게 각자 집에서 가장 좋은 술 한 동이를 선물로 가져오라고 말했다. 드디어 왕의 생일잔치가 열리는 날, 모든 신하들은 술 한 동이씩 가져와 큰 항아리에 가득 채운 다음 한잔씩 나누면서 축배를 들었다. 왕의 건배 제안에 따라 술을 마시던 신하들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 항아리 속의 술은 맹물에 불과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신하 각자로부터 술을 선물을 받았으면 왕은 가장 좋은 술맛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왜 항아리 속의 술은 맹물인가? 한 마디로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고 ‘나 하나쯤’이야 하는 이기심 탓이다. 익명성이 보장될 때 우리는 공동체의 선보다는 자기 이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왕정시대의 신하뿐만 아니라 국민의 공복(公僕)이라고 자임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은 분명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와 행정을 부르짖으면서도 실제로는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열을 올리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일반 시민들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 박창달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이나 이명박 서울시장의 망언, 서울시 대중교통체계 개편 부작용 등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이명박 서울시장의 ‘서울 봉헌’ 망언은 공직자로서의 자세를 망각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는 한 술 더 떠 “교통대란이 사전에 숙지하지 않은 시민 탓”이라는 책임을 시민에게 전가하는 부끄러운 모습까지 보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유비무환의 정신을 강조한 금언이다. 우리는 유비무환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소 잃고 외양간을 정말로 잘 고쳤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외양간의 썩은 말뚝을 뽑고 새로운 말뚝을 박고 싶다. 그래서 다시는 외양간의 소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말이다.
열여섯 번의 국회를 통해 우리는 국회의원들의 사탕발림 말에 얼마나 속아 왔던가? 자리다툼과 제 식구 감싸기가 17대 국회에서는 사라지리라 기대하였건만, 상임위원장 배분과 박 의원 사건은 “역시 정치인은 어떻게 할 수 없어”라는 자괴감을 낳고 있다. 이뿐 아니다. 아파트분양 원가 공개와 이라크파병을 둘러싼 여권의 마찰음은 대한민국 여당이 과연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만 그런 게 아니다. 행정도 마찬가지이다. 외교행정의 어려움을 이해한다고 해도, 김선일씨 피살로 인해 과연 이 나라의 정부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의 대중교통체계 개편 역시 서민들의 발을 이렇게 안하무인격으로 짓밟아도 되는지 의아심이 생긴다. 게다가 뒤늦게 터진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발언은 이미 상식을 벗어나 서울시민을 우롱하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우리 국민은 이 나라의 주인이기까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는 정치나 행정이 국민을 바보 얼간이로만 취급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공무원이나 정치인의 행위가 그 책임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윤리적인 존재이다. 우리도 이제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싶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사심(私心)을 버리고 윤리적 옳고 그름이나 공동체에 미치는 결과를 고려하여 제도를 만들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것이 아직도 지나친 욕심일까? 공동선의 정치와 행정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국민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명심하자.
200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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