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지식 ‘목적’ 아닌 ‘수단’에 불과
현재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생명과학은 서양 근대 과학의 한 분야로서 근대적 생명관의 산물이다. 신(神)의 이름으로 인간 삶의 희생을 강요하던 중세를 벗어나 개인의 욕망 충족을 인정한 근대에 들어서면서, 인간은 세계를 소유와 지배의 대상으로 간주하게 됐다.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인간은 자연과 타인을 유물적으로 대상화시키고 분석하는 과학적 방법을 발전시켰고, 그것은 오늘날의 거대한 물질문명의 계기가 됐다. 과학은 우리의 욕망을 소유라는 형식으로 충족시키는 수단이 되어 사회의 물질적 풍요를 뒷받침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계론적 사고방식과 사물의 소유를 통해 나타난 오늘날 세상의 모습은 개인과 집단의 욕망 추구에 따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과 지배, 그로 인한 소외와 단절의 모습이다. 근대적 제도나 법, 혹은 과학이 이상사회를 만들어서 참다운 인간적 삶이 가능하다고 믿는 이 시대의 소박한 법학·사회학·과학자들의 꿈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전형적 근대 자본주의국가며 과학이 발달한 영국이나 미국 사회를 볼 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치안공백 때 나타나는 폭동이나 약탈, 인종 갈등은 무어라 설명할 것인지. 그것은 결코 근대적 이론으로 무장한 정치가나 학자들이 꿈꾸는 이상사회와는 전혀 거리가 먼, 굳이 말한다면 자유라는 이름하에 추구되는 유물적 욕망이자, 이를 위해 돌진해 가고 있는 근대사회의 전형적 모습이다.
과학적 지식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생명과학은 근대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과학지상주의의 흐름을 타고 모든 것의 구세주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모든 존재는 관계로서 연결되어 있고, 모든 생명체는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지 기계적 관점으로 대상화시킬 수 없음을 강조하셨다. 또 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에게, 결과가 원인에게도 영향 미칠 수 있기에 서로 나누며 서로를 존중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제도나 법, 과학적 지식이 어떠하건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쓰는 주인으로서의 인간이며, 사람들이 얼마나 성숙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성숙도가 결정됨을 말해주고 있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생명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여전히 우리의 욕망 충족을 위해 발전하여 개인과 사회의 소외와 단절을 심화시킬 뿐이다. 우리 사회가 근대를 뛰어넘는 다양한 탈근대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상 만물이 상호의존적 존재이며 모든 생명은 존엄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 욕망의 실체를 파악하고 진정한 자유로움은 무엇인지 깊이 통찰하여 각 개인이 자각하고 스스로 변할 때 진정한 생명과학의 방향은 탈근대적인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