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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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 스님의 스님이야기(진명 스님)
아량 넓고 자신에겐 철저
너그럽고 따뜻한 심성 소유

진명 스님을 처음 본 것은 해인사강원에서다. 스님은 나의 해인사강원 일 년 선배인데, 선배 스님들 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해인사강원의 대교반은 4학년을 말하는데, 무섭기로 말하면 도량 안에서 이보다 더한 곳이 없다. 강원의 기강을 입승스님이나 찰중스님이 다스리기도 하지만 학년전체의 규율은 대교반에서 지도한다.
연중 행사로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적당한 날을 정해서 3학년인 사교반부터 1학년인 치문반까지 대교반이 사용하는 관음전으로 차례로 소집된다. 이때는 강원 전체가 비상이다.
선후배간 질서를 세우는 방법도 대교반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한다.
불려가는 당사자들인 우리는 관음전에 들어가기 전부터 어떻게 하면 1시간을 잘 버틸 수 있을까 묘안을 짜내기에 여념이 없다.
관음전 큰방으로 불려가면 선배스님들은 아랫반을 방 가운데 질서정연하게 무릎을 꿀려 앉힌다. 그리고 아랫반 주위에 원을 그리며 빙 둘러 앉는다. 이제 아랫반에 대한 대중공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대중공사는 윗반 학인들이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아랫반 학인들에게 지적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사람이 5분만 말을 해도 열 사람이면 50분이 된다. 꿇어앉아 있는 당사자인 우리들은 30분이 지나면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1시간이 지나면 졸도하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
아랫반은 행전을 착용하는데,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면 행전이 오금과 종아리를 더욱 조여서 대중공사의 효과를 높이는데 적절히 기여한다. 그래서 졸도를 하게 되는데, 졸도하는 사람이 나오면 대중공사는 끝난다. 그렇다고 일찍 끝내자고 일부러 졸도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사람은 신심과 원력이 없는 것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이때 대교반 선배가 말을 짧게 하거나 적게 하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말이 많거나 길면 윗반이라도 아랫반에 미운털이 박힌다.
그런데 진명 스님은 아랫반에 도대체 경책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냥 합장하면 끝이다. 항상 웃는 얼굴에 오로지 경전 보는 일에만 열심이다. 도량에서 선배를 만나게 되면 후배들은 깍듯이 합장을 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진명 스님은 싱그러운 미소만 짓고 지나간다. 요즘으로 치면 ‘범생이’ 라는 말이 적절할 모범생 스님인 것이다. 한 눈 팔지 않고 경전에만 매달리니 경전실력은 강주 스님에 버금가는 학인이었다.
이 훌륭한 스님을 강원 졸업하면 자주 보지 못하겠구나 했는데, 졸업한지 10여년이 지나면서부터는 불교계 언론에 가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내가 포교원에서 근무하기 위해서 원장스님으로부터 면접을 보는데, 진명 스님을 만났다.
나는 너무도 반가워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 포교부장 일관스님도 강원 선배인데, 연구실장인 진명 스님까지 선배이니 서울생활에 대한 부담이 한결 가벼워졌다. 두 선배스님의 보살핌으로 부족함이 많은 내가 포교원 소임을 그런대로 잘 마친 것 같다.
포교원에서의 진명 스님은 강원학인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숙소를 스님은 위층, 나는 아래층을 쓰는데 스님은 언제나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서 일정한 시간에 출근했다. 나는 항상 늑장부리다가 허둥대면서 지각 일보직전에 겨우 도착하는데, 스님은 몇 시에 도착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다니니 시간이 늘 넉넉했다.
또 누구에게나 나무라는 법이 없다. 본인 자신에겐 철저하지만 남에게는 너그럽고, 말을 아끼면서 잘 챙겨준다. 타고난 천성이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활화되어 있으니 진명 스님이 가는 곳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저절로 형성된다. 항상 빳빳하게 풀먹인 무명옷에 꼿꼿한 자세가 몸에 밴 진명 스님은 무비 스님(현 범어사 강주)의 맏상좌다.
그러고 보니 조계종 포교원은 원장스님부터 부·실장 스님까지 모두 맏상좌라는 공통점이 있다. 원장 도영 스님은 월주 스님 맏상좌, 포교부장 일관 스님은 일면 스님의 맏상좌이다.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애정으로 보살피고, 아랫 사람은 윗 사람을 어른으로 깍듯이 존경하니 항상 원만한 분위기다. 어른들이 이런 분위기를 앞장서 만드니 젊은 우리들은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말은 넘치고 사람들이 복닥대는 속에서도 고독감이 느껴지는 요즘 세태지만 포교원의 어른 스님들에게서, 인생의 즐거움이 말보다는 실천에 있음을 배웠다. ■해인사 원당암
200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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