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구한 돌 쌓기만 하면 무너져 참회하며 장승 한 쌍 세우니 ‘홀가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우선은 집안에라도 탑을 쌓고 그 안에 삼존불(三尊佛)을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던 나의 몸은, 탑을 쌓으려는 결단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적당한 돌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고 말았다. 금방이라도 완성될 것 같던 탑이 단 10cm도 올라가지 못하고 번번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처음 탑을 쌓을 때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끝에서 하나로 이어져 올라가던 돌들이 그때보다 더욱 정성을 들이는데도 하나같이 따로 노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업이나 원결을 쌓은 것은 아닐까 싶어 다시 한번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들여보았지만 돌들은 잔뜩 불만이 쌓인 채 등을 돌리고 서있는 느낌이었다.
‘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또다시 처음 ‘무’자 화두를 들었을 때의 막막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탑이라는 답을 얻었으니 이제 실행만 하면 될 것이라는 그 희열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는 자괴감이 물밀 듯이 몰려오고 있었다.
‘부처님 전에 참회합니다.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한없는 자괴감으로 전신이 지쳐나갈 때, 탑이 완성되면 그 안에 모시려고 한 삼존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꿈에서 뵌, 불보살들의 장엄한 화현(化現)이 생생한 기억으로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참회의 눈물이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도 모르게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 배, 이 배… 이마에서 시작된 땀이 등허리를 타고 내려갔지만 나의 오체투지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무런 고통도 그에 따른 어떤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
이때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입가엔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운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돌이었다. 쓸만한 돌을 찾을 요량으로 내 손에 들려지다, 성에 차지 않아 다시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던 그 볼품 없던 돌들이 오체투지에 지쳐 가는 내 전신의 기혈(氣穴) 곳곳에 아무런 조건도 기대도 없이 불보살의 원대한 공력을 실어 건네주는 것이었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의 그 긴 시간동안, 내 손끝에 버려진 돌들이 내게 이런 자비를 베풀고 있다니…. 그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환희심에 전신이 녹아들고 있다는 느낌만이 전해질 뿐이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했든가, 유정물과 무정물의 경계마저 허물어버린 경지가 바로 불국토인 것을 숙지할 수 있는 무한 공덕을 받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경이로움이었다. 그토록 속을 썩이며 허물어지던 선택받은 돌과 내게 불보살의 자비를 그대로 전해준 버려진 돌이 내 입가에 핀 미소를 보고 하나같이 부처가 되기를 소원하는 대발심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불보살의 한량없는 공덕의 결과로 삼존불을 모신 작은 탑을 올릴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또 한번 탑을 쌓는 일이 내 운명인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루빨리 탑을 쌓아야한다는 생각만으로 전국의 곳곳을 찾아다니는 험난한 여정 중에도 불심이 깊은 불자나 선지식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흘러갈 수록 내 몸과 영혼이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었다. 생업마저 포기한 채 오직 탑 하나만을 생각하다 보니 때로는 나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릴 정도가 되었다. 도대체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그런 참기 힘든 인고의 시간들이 다시 몇 년의 세월로 흘러가고 말았다.
그 사이에 인연이 닿는 산자락 곳곳에 작은 탑들을 쌓기도 하였지만 나의 가슴은 오직,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물론 구천을 떠도는 수많은 영혼을 일순간에 구제해 줄 수 있는 대자대비의 원력이 담긴 탑을 쌓는 일이었다. 그러던 지난 겨울 폭설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탑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현몽(現夢)을 접할 수 있었다.
탑을 쌓지 않고서는 이제 더 이상 버텨 낼 수 없을 것 같은 절박함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정수리 부위에 서기(瑞氣)가 내려앉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 생에선가 한 번은 뵈었을 듯 싶은 노스님이 나타나 ‘부처님 전에 올릴 나무 한 쌍이 쓰러졌으니 일으켜 세우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었다.
나는 스님이 일러 주신대로 폭설이 내린 속리산의 한 자락에서 나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소나무 한 쌍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소한 100년 이상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이처럼 쉽게 몸을 꺾었다는 사실을 인간의 상식으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앞으로 몇 백년은 더 살 수 있을 소나무가 자신의 몸을 기꺼이 불전에 바쳤다는 생각마저도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노스님의 현몽대로 쓰러진 소나무를 불전을 지키는 장승으로 되살리는 일밖에 없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속리산 자락에 탑을 쌓기 위한 대업(大業)의 시작을 알리는 장승 한 쌍을 세울 수 있었다.
하루빨리 불보살의 원력이 담긴 탑을 쌓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오늘도 생업과 기도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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