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개체성 조화와 균형이 중요
생명현상의 가장 중심에는 각 생명체의 개체성(個體性)이 있다. 다시 말하여 모든 생명체는 각자 고유한 개체로서 각자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소중한 존재이며, 부모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 부모가 대신 병들어 죽어줄 수 없다는 한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생명과학의 가장 기본적 목표는 이러한 개체성 유지이며, 복제 장기나 이종(異種)간 장기 이식도 제대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러한 개체성을 극복해야 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많은 분야의 생명과학 중에서도 개체성을 연구하는 학문은 면역학(免疫學)이다. 재미있는 것은 생물의 개체성을 규명하는 면역학이 특정 물질이나 세포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고 결국 그러한 각 구성체 간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점이다. 면역학은 개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진정한 자기(自己)와 이를 침입하는 타자(他者-세균, 바이러스 등의 침입자) 간의 관계, 혹은 진정한 자기와 착각하고 있는 자기 (종양, 암)와의 관계를 다루며, 이러한 관계는 수많은 생체 물질이나 세포로 이루어진 망(network) 구조이다.
건강한 면역 상태란 그러한 망 구조가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어 조화로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면역기능이란 그러한 조화로운 상태를 진정한 자기라고 인식하여 그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능에 불과하다. 결국 면역학적인 참된 자기는 마치 부처님의 연기법처럼 고정된 실체 없이 어떤 조건이 있을 때 단지 그 조건에 의하여 특정 결과나 상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결코 우리가 생각하듯 내 몸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대면역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진정한 신체적 자기라는 것은 그 실체가 없고 모호해진다. 면역이 외부 침입하는 이물(異物)로부터 나를 보호한다면, 과연 보호 대상인 나는 누구인가? 현대면역학적 대답으로서는 그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균형 잡힌 조화로운 상태인 것이다. 이 상태는 단지 조건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에 불과하며, 더욱이 이 조화로운 상태는 결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구성체간의 관계 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동적 구조이다. 그래서 사람이 장기 이식을 받을 때 그 시점에서 아무리 자기 자신과 잘 맞는 장기를 이식받았다 하더라도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하는 것과 같다.
이렇듯 현대 면역학은 고정 불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이 오직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피고 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부처님 말씀을 증명이라도 하듯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암세포가 자신으로부터 생겨난 탓에 우리의 면역계는 건강한 세포와 구분을 잘 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생명을 잃게 되는 것처럼, 참된 자기는 외면한 채 희노애락 속에 허망한 자기를 참된 자기로 알아 애지중지 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일종의 암에 걸린 상태와 같은 것이다. 오직 깨어서 단지 속지만 말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