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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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입법계품 <73·끝>연재를 마치며/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바른 삶 추구하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

<화엄경> ‘입법계품’ 강의를 연재하였던 지난 일년 반 동안은 참으로 힘든 기간이었다. 첫걸음을 시작하는 신설 대학교의 여러 가지 업무로 심신이 지쳐있는 가운데, ‘입법계품 강의’의 원고 작성은 나에게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화엄경> ‘입법계품’은 사실 쉽지 않은 경전이다. ‘선재동자’와 ‘53선지식’ 등 몇몇 단어만 일반인들의 입에 친숙히 오르내릴 뿐 그 구체적인 내용은 경전의 지명도에 비해서 별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 까닭은 53선지식의 법문 내용이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입법계품’ 강의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은 가끔씩 보던 경전이고, 또 더러 강의도 해 보았던 터라, 이 기회에 ‘입법계품’ 공부도 제대로 해보고, 또 일반인들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보자고 하는 유혹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혹은 아름다웠지만, 그 과보는 역시 극심한 고통으로 돌아 왔다. 우선 내용을 쉽게 전달해야 하는데, 내 자신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원고 마감시간을 훨씬 지나서 나 때문에 신문이 못나오게 된다고 야단인 지경에도 앞뒤가 꽉 막혀서 꼼짝 못하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늦은 밤 계룡산 자락의 교정을 배회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이른 새벽에 교내 법당에 올라가 부처님께 왜 이렇게 내용을 어렵게 설해 놓으셨냐고 항의도 하고, 부디 쉽게 설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기도를 하기도 하였다.
나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원고지 12매 분량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12매 안에 한 선지식의 법문내용의 줄거리를 소개하면서 설명을 곁들인다고 하는 것은 명민하지도 못하고 글솜씨가 없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난감한 일이었다. 이래저래 연재가 끝난 이 마당에 나름대로 애를 썼다고는 생각하지만 참으로 미흡한 심정이다. 그리고 부처님과 독자들에게 진실로 죄송할 따름이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편치 않는 심정을 가지게 된 강의였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한번 ‘입법계품’의 교설에 감동하고 부처님께 깊이 감사드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선재동자의 구법이야기는 선재라고 하는 동자의 구법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구법이야기로서 진실한 삶을 추구하는 모든 이에게 해당될 수 있는 것이다. 법계라고 하는 것은 진리의 세계로서 거짓됨이 없는 진실한 세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대로 부처님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법계는 중생들의 미혹한 세계와 상대되는 세계이다. ‘법계에 들어간다(入法界)’고 하는 것은 미혹된 세계에서 진실한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입법계품’은 선재동자의 구법이야기로써 그것을 구체화하고 있다.
선재동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어둡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절절히 참회하며 새로이 진실한 삶을 살아가고자 발원(發願)하는 것은 실로 감동적이다. 이 원심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다. ‘입법계품’에서 이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 법계에 들어가게 되는 관건이 된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특히 주목할만한 가르침이다. 보리심과 같은 원심은 빛과 빛이 오는 근원인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찬탄과 귀의를 수반하고, 그 가치를 자기 스스로 구현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부단히 법을 구하는 것은 선지식들의 가르침(법문)이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진실한 가르침(법문)은 인간과 진리를 하나가 되게 하며, 법(法)이 구체적인 인격에 구현됨으로써 여러 가지 지혜롭고 자비로운 공덕을 갖춘 인격을 출현시켜서 인간이 부처가 되게 하는 인격적 전환을 가져오도록 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미혹됨이 없는 세계이며, 스스로 지혜롭고 자비로운 참생명을 발동하는 세계이기도 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입법계품’을 비롯한 <화엄경>의 교설들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이야말로 <화엄경>의 가르침을 단순히 머리로써만 이해하려고 하는 자들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지혜롭고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많은 인간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삶의 방향을 근원적으로 전환시켜주는 선재동자의 구법이야기도 그럴듯하게 엮어진 단순한 얘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진실로 ‘입법계품’은 광대한 자비의 원을 일으켜 부단히 진실을 추구해감으로써 현실세계에서 항상 깨달음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입법계품’을 부사의한 해탈경계에 들어가도록 하는 법을 설하는 가르침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다. 법계는 결코 지식으로써 들어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진실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열고 실현함으로써 언제든지 열릴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다음주부터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형조 교수의 <대승기신론>강의가 연재됩니다.
200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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