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는 인간사회에 큰 영향 줘
과학 연구는 인간의 인식 한계를 지속적으로 넓혀왔다. 이제 작게는 분자 구조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크게는 몇 백 광년이 떨어진 먼 곳의 별들도 보게 되었다. 따라서 예전의 좁은 인식 범위에서 생긴 여러 기준들은 과학 지식의 발전에 따라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의 변화도 있을 수 있다.
생명과학의 연구에 있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생명과학이 개체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생명체를 연구하고 있지만 생명과학의 연구 결과는 지금까지 지녀온 우리의 인식 한계를 넓힘으로서 과거의 좁은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는 우리들의 관계 자체도 변화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한다면 생명과학의 연구결과가 사람 간의 관계를 다루는 사회학이나 인문학에 영향을 미치며 또 우리의 윤리, 도덕, 관습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가 연구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최근 네이처(Nature)라는 학회지에서 한국에서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성을 거론하였고 국내 일간지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한국에서 실행되어 발표되었던 연구는 그 방법에 있어서 240여개의 건강한 난자를 사용하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것이었다. 기존의 인간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또 그 실험 과정에서 결코 윤리적일 수 없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험 과정에서도 윤리적인 면이 엄밀하게 준수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과학자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은 지극히 불교적이다(불교가 과학적이란 말은 우스운 말이다). 진정한 과학이란 부처님께서 설하신 내용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야기된 국내 연구에 대한 국제 학계의 문제 제기를 보면서 단순한 개체 연구를 하는 생명과학이 너와 나 상생의 생명연구가 되기 위해서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나중도 좋아야 한다는 부처님 말씀에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과정 자체가 동시에 곧 결과임을 아는 불자이기에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그 연구 과정이 합리화 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지식은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기에 과학자는 늘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왜 이 연구를 하는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도구로서의 과학은 맹목적이며 또한 사물을 지극히 잘게 잘라 분석적으로 행한 특정 연구 결과를 종합함으로서 전체를 알 수 있다고 보는 것이기에 과학 연구는 항상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상황이 존재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렇기에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에 지닌 과학자라면 모든 생명의 인드라망으로 표현되는 연기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어 전체적인 관계와 조화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고 또 이러한 면이 불교가 진정한 생명과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