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석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최근 호주의 ‘에코부다’ 라는 신발을 만드는 업체에서 “유럽형 디자인에 동양적 가치를 접목시킨 제품”이라며 부처님의 좌상로고를 신발 뒤축에 새긴 스포츠화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가 웹사이트를 이용한 판촉에까지 나서자 불교국가인 태국정부에서는 호주정부에 대한 외교적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이 경우처럼 단순히 이익창출을 위한 기업마인드만 가지고 만든 상품은 불교를 폄훼하거나 왜곡시키기 일쑤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기업마인드와 불교적 정서가 충돌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불교문화를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불교문화를 상품으로 개발하여야 한다는 의견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왔지만, 사실상 불교문화를 상품화하기 위한 전문인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고유한 불교 정서와 현대인의 정서를 접목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일은 시급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여기에서 조심할 일이 있다. 과연 불교문화상품이 불교문화를 널리 확산시키는 작업의 일환인지, 아니면 불교문화를 상품화하여 이익을 내자는 경제의 논리인지 명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필자를 감동시킨 장면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4년 전 TV서 본 것으로 기억된다. 내용은 일본의 한 작은 마을에 관한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오로지 ‘지장보살상’을 조성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나무를 깎고 어떤 사람은 칠을 하고, 다듬고, 운반하고, 판매하고 있었다. 지장보살상의 모양도 제각각이었고 크기도 아주 다양했다. 온 마을 사람들은 행복한 얼굴을 하며 온 정성을 다하여 이 일에 전념했다. 이 곳은 작은 마을이었지만 외부에서 찾아오는 관광버스로 연일 주차장이 가득했다. 이 마을의 불교문화상품은 ‘지장보살상’ 뿐이었다. 열쇠고리 모양에서 저금통 모양의 지장보살상까지 다양한 색채와 크기로 만들어졌다.
깜짝 놀랄만한 것은 이 지장보살상에 눈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매우 특이한 모습에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지장보살상은 현대적 감각이 가미된 모양이었기 때문에 비록 눈이 하나밖에 없어도 흉하지 않았다. 그럼 왜 눈이 하나밖에 없단 말인가?
이 마을에 지장보살을 모시러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름대로 원을 세운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고시공부를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담배를 끊으려 하였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나쁜 버릇을 고치려고 했다. 모두 나름대로의 문제를 풀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집으로 가져간 저금통 모양의 지장보살상 앞에서 아침저녁으로 자신의 원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올린다. 저금통 모양의 보살상이 동전으로 가득 찰 쯤이면 그들의 원은 이루어진다. 그러면 이들은 소중하게 모시던 외눈박이 지장보살상에 나머지 한쪽 눈을 스스로 그려 넣는다고 했다.
너무나 아름답고 의미 있는 불교문화상품(?)이 아니겠는가? 원을 이룬 그들은 두 눈을 갖게된 지장보살상을 부처님전이나 아니면 양로원, 고아원 등에 바친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다른 원을 이룰 지장보살상을 모셔가기 위해 다시 지장마을을 찾는다고 한다.
문화상품에 스토리가 빠지면 생명력이 없다. 우리도 이런 이야기를 먼저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문화가 상품이 되려면 역시 감동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불교문화상품도 마찬가지다. 불교적 정서와 기업적 마인드가 결합된 아이디어의 창출은 불교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셈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 잃을 수도 있고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