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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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만법에 걸림없는 자유인 되세요!
맡겨 놓으면 그냥 녹아버려요

여러분을 만나뵌 지 몇 달 된 것 같습니다. 12일 만에 왔는데도 이번에는 상당히 오래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가 왜 이런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전부터 말씀드렸지만 여러분이 이런 공부를 함으로써 첫째는 이 세상을 바로잡아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고, 또 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고, 내 가정을 잘 다스릴 수 있고, 내 마음을 내가 다스릴 수 있어서 모두 자유스럽게 끄달리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여러분이 사대(四大)로 흩어져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요다음에 뚜껑만 열면 승(僧)으로서 이 세상을 감당하리만큼, 아마도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모습을 하면서, 행도 중용을 하면서…, 아마도 저 깊은 바다가 흘러도는 그 자체가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들고 남이 없이 용을 하는 것은 바로 법신(法身), 문수(文殊)의 설(說)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푸르른 저 청정한 산과 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 승가(僧家)의 설이 아닌가 이렇게 봅니다. 그것이 모두 둘이냐 하면 둘이 아닙니다. 둘이 아닌 까닭에 푸르름은 절로 푸르르고, 꽃 핀 거는 꽃 핀 것이고, 물 흐르는 것은 물 흐르는 것입니다.
지금 공부하는 분들이 아집과 아상을 가지고 “내가 이만하면 이런 위치에서 이런 학위를 땄고 하나도 아쉬움이 없는 대업을 하고 있고, 내 가정이 돈이 없어서 질질 매지도 않는데 내가 뭐 배울 게 있나!” 이러지마는 잠시 잠깐입니다. 그런 걸로 인해서 자기 마음을 자기가 다스리지 못하고 자기가 고개를 숙이지 못한다면 바로 쭉정이를 낳는 벼이삭과 같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실천을 옮길 수가 없고, 모든 것은 사람이 돼가지고 사람 노릇을 못하는 격이나 마찬가지인 것이죠.
나는 예전에 이렇게 했었죠. “이 세상을 다 줘도 바꿀 수 없는 당신이시여! 당신은 그렇게 말할 수 없이 자비하신데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했습니다. 스무살 안쪽이죠. 그런데 그때 “색경을 봐라! 거기에 있느니라.” 색경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못생긴 내 얼굴만 보이지 도대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건 왜냐하면 부(父)와 자(子)가 상봉을 하고도, 내가 경(經)을 봤습니까? 설법을 들었습니까? 그랬으니 그걸 모를 수밖에. 그렇게 자비하고 그렇게 같이 하면서도 볼 수 없었으니 그 모습이 그리웠던 겁니다. “당신의 모습은, 얼마나 그렇게 자비한데 당신은 모습이 없고 모습을 안 보이십니까?” 흠, 그렇게 어리석었어요. “색경을 봐라. 네가 손을 쳐들면 거기서도 손을 쳐들고, 네가 찌푸리면 거기서도 찌푸리고, 네가 울면 거기서도 눈물을 흘리느니라, 네가 마음이 괴롭고 언짢으면, 그리고 고독하면 바로 나도 역시 마찬가지니라. 네 그릇이 크다면 나도 클 것이고, 네 그릇이 작다면 나도 작을 것이다. 니가 울면 나도 같이 따라 우는 것이고 내가 울면 네가 같이 따라 우는 것이니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 소리를 듣고서 하염없이 울면서 하루를 지내고 이틀을 지내도 몸이 고달프다는 생각도 없었고, 못 먹었다는 생각도 없었고, 괴롭다는 생각도 없고, 나 홀로라고 생각을 한 예도 없습니다.
여기 이렇게 앉았어도, 여러분과 같이 내가 높이 여기 앉았다고 해서 높이 앉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 같이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습만 보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저렇게 위에 높이 있다고 해서 높이 계신 게 아니고 여러분이 생활하는 그 속에, 여러분 마음속에 같이 항상 자비를 베푸시면서 찰나찰나 들고 나십니다. 여러분이 원하시는 대로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삼라만상의 그 여러 중생들, 이 세상의 보이는 중생,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중생들을 다 거두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대로 미꾸라지처럼 말입니다, 요리 빼끗 조리 빼끗, 그렇게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너무 물질에 젖고 너무 말 수단에 젖고, 너무 배워서 아는 게 많아서 젖고, 습에 젖어서 그렇게 벗어나질 못하고 떳떳하게 설 수가 없는 그런 이치가 아주 많이 보입니다.
무조건 죽지 않는다면 죽은 세상을 어떻게 맛볼 것입니까? 만약에 우리가 죽는다면 아주 죽는다면, 반쯤 죽는 게 아니라 아주 죽는다면 생산이 될 것입니다. 아주 죽는다면 다시 태어날 것이고 아주 죽지 못한다면 고생을 길게 하고 길게 아마 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이판(理判)이다 사판(事判)이다 하는 것은 우리가 둘이 아닌 까닭에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이판 사판 아니겠습니까? 이래도 죽을 것이고 저래도 죽을 것인데 살면 얼마나 더 살 양으로 그렇게 애를 써야 하죠? 몸으로 죽으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마음이 죽는다면 몸도 항상 고개가 숙여지고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부드러운 말을 해줄 수 있고, 남들을 이익하게 해줄 수 있고, 일체 만법에 걸림이 없이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됐을 겁니다.
내가 여러분 앞에 이렇게 항상 하는 말이 재미있지도 않고 딱딱하기만 하겠죠. 그러나 딱딱한 것은 바로 약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한테 재미있게 웃기기나 하고 과거 얘기나 하고 그런다면 여러분이 얼마나 실망하실는지, 여러분은 웃고 즐기고 그러시겠지만 여러분 속의 여러분은 아마 실망하실 겁니다.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여러분은 눈 뜨고 눈 감고, 일어나고 앉고 서고, 생활하는 일체 만법을 바로 여러분이 하신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바로 내 주인공이 이렇게 하고 있지. 그 주인공이 무엇인고?’ 하고 ‘그 하는 놈이 무엇인고?’ 하기 이전에 그놈이 하고 있다는 것으로 넘어가야 되겠죠. 지금 이 밝은 세상에 ‘그놈이 뭣고?’, ‘모두를 이렇게 들이고 내고 있는 놈이 무엇일꼬?’ 하기 이전에 ‘바로 그놈이 하는 것이구나.’ 하고 뛰어넘어야 되겠죠. 삼학년까지 공부를 잘하다가 너무 잘하니깐 사학년을 뛰어넘어서 공부를 해도 능히 하더랍니다.
그와 같이 지금은 우리가 생전에 오고 감이 없이 오고 감을 알고, 들은 사이 없이 듣는 걸 알고, 말하는 사이 없이 말하는 걸 알고, 책을 보되 보지 않는 걸 알고, 책이 나를 보지 않는 거를 알고, 저 구름이 스스로서 오고 가는 걸 알고, 인간이 스스로서 생하고 멸하는 걸 알고, 이 모든 망상이 전부 망상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한다 하는 것을 모두 증득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렇게 해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요다음에 모습을 바꿔가지고 나올 때는 여지없이 중이 돼서, 중이라는 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바로 계(戒)·정(定)·혜(慧) 이러는데 계도 정에 들고, 혜도 정에 들어서 올바른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중이 돼서 이 소임을 맡든 저 소임을 맡든 수천 수만을 이끌어갈 수 있는 그런 대장부로서 이 세상을 주름잡을 때 비로소 우리 국가의 역사는 거대하게 그려질 것입니다. 중이라는 것은 머리만 깎고 옷만 입었다고 해서 중이 되는 게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 산천초목도 쳐다보고 이 가슴속에 흘리는 눈물이 저 한 방울의 피와 같이 바다를 모두 메꿀 수 있는 한 방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내 마음과 또는 일체제불의 마음이, 일체 조사의 마음이,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의 마음이 다 한마음으로서 접근이 된다면 이끌어가지 못할 게 없죠. 바로 여러분 마음 하나만이라도 접근이 돼야만이 그 모두가 접근이 되는 것이고 아주 여여하게 행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내 마음을 알아주실 수도 있고 일체제불 마음도 알아주실 수가 있고, 역대 조사들의 마음도 알아주실 수가 있는가 하면 천백억화신의 마음도 알아주실 수가 있고, 이 산천초목도 변하지 않는 게 없으니 이 모든 마음들을, 바람의 마음도 알아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풀 한 포기의 마음도 알아주실 수가 있고요.
본래 나쁜 것은 없습니다. 본래 물도 나쁜 것이 없듯이 사람의 마음도 나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독이 들고 살아가면서 선인의 일을 하고 그러죠. 팔자 운명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으로 지어서 팔자를 만들고 운명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번에 미국에 갔다 오면서도 그랬습니다. 옆에 앉아있는 우리 스님더러 그랬습니다. “저기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게 보이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안 보입니다.” “그래 안 보이긴 하나 돌아가는 건 알지?” 그러니까 안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요. 그 돌아가는 데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돌아가고 있죠. 우리가 지금 그런 식이죠. 보이지는 않지만 돌아간다는 건 알고 있을 겁니다, 모두. 그런데 그 돌아가는 불바퀴, 여러분의 불바퀴에 어떠한 요건의 문제도 어떠한 용도에 따라서 어떠한 게 닥친다 하더라도 거기에 맡겨 놓으면 그냥 녹아버립니다. 그냥 장난 삼아 맡기는 게 아닙니다.
그렇듯이, 보세요! 모든 것은 보이지는 않으나 어떠한 용도에 따라서 거기다가 진실하게 ‘너만이 이것을 녹일 수가 있다.’고 진실히 믿는다면, 믿는 마음이 물러서지 않는 반면에 올바른 생각을 하고 올바른 행을 하고 그런다면 두려울 게 없죠. 그래서 그 모든 것이 거기에 닿기만 하면, 그 프로펠러에 닿기만 하면, 그게 불바퀴라고 한다면 그냥그냥 갈아져버리고 부서져버리고 녹아버리고 타버리고 이렇게 하는 반면에 참 여러분이 홀연히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나타난 분에 한해서는 또 ‘내가 이만하면 깨달았지.’ 하시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가 나를 발견했다고 해서 깨달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망상을 갖지 마십시오, 내가 깨달았다고. 나를 발견했다면 겨우 땅속에서 씨가 나와서 겨우 싹이 한들한들 하면서 나오는 격입니다. 그것이 다 길러져서 이 세상에 모두 이심전심으로 둘이 아니게 조화를 이루고 돌아갈 때 그때에 바로 둘이 아닌 도리를 알게 됩니다.
그래도 깨달았다고 말은 못합니다. 열매가 맺어서 온 누리를 두루 하면서 씨가 앉아서 무르익었을 때, 그 씨를 심어서 세세생생에 끝간 데 없이 먹일 수가 있는 그런 실과가 돼야 하고, 남들이 그 익은 실과를 갖다 먹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도 영원히 그 실과 하나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그 점, 바로 이름해서 구경경지에 이르러서 과거삼·현재삼·미래삼이 통달해서 인간이 제대로 돼야만이 자유인이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지금 여기 다니신 지 여러 해가 되는 분들도 많고 새로 오신 분들도 많고 그런데 제가 한마디 질문할까요?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나한테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여직껏 공부한 게 공부를 어떻게 해야만이 잘 해나가는 건지 여러분 대답해보십시오.
▲신도1(여): 스님들도 계시고 많은 신도님도 계신데 나이 어린 제가 나와서 떨리기가 한이 없습니다.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합니다.
▲스님: 그냥?
▲신도1(여): 예, 그냥.
▲스님: 어, 그래.
▲신도1(여) 맞았습니까?
▲스님: 맞긴 뭘 맞어? (대중 웃음)
▲신도1(여): 맞는 것도 놓는 것도 그냥입니다. 그냥입니다.
▲스님: 그냥…. 그래, 그냥 그냥이야. 그냥 해도 안 되고 그냥 그냥이야. 그대로 해봐!
▲신도1(여): 감사합니다, 스님. 스님의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스님: 그대로 잘해나가. 또 질문할 사람 없습니까?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 어떻게 해야 잘 해나가는 겁니까? 다 사람은 차원에 따라서 생각이 다를 테니깐요.
▲신도2(여): 저는 스님 앞에 말씀드리기가 너무 외람되는가 싶습니다. 그런데 고만 봐도 못 본 체 들어도 못 들은 체 그저….
▲스님: 허허허. (고개를 좌우로 흔드심.) 하여튼 이제 그만치 해도 알겠으니깐 가보세요. 또 누구 없습니까?
어떻게 해야 공부를, 마음의 공부를 잘하는 건지 아시는 분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잠시 말씀을 멈추시고) 없습니까? 그래요. 항상 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 하느냐고. 그런데 여러분은요, 여러분이 있는 줄 알기 때문에 잘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空)해서 아니, 누누이 얘기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내가 내가 아니라고요. 아버지가 됐다가 남편이 됐다가, 형님이 됐다가 아들이 됐다가 사위가 됐다가 온통, 그리고 또 그것뿐입니까?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이 맘 가졌다가 저 맘 가졌다가 그러니 어떤 거 할 때 여러분이라고 할 수 없으니 공해서 여러분은 공한, 한 물건입니다. 그 물건이 너무도 많이 하기 때문에 그게 어떤 놈이겠습니까? 다, 한 놈이지. 한 놈이란다고 또 절 욕하지 마십시오. 하다보니깐 그렇게 됩니다. 그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하는데, 그러니 이것부터 알아야 하나로 돌아가는 걸 알죠. 네? 여러분이 모두 하나로 돌아가는 거, 무(無)와 유(有), 이 세상만사가 하나로 돌아가는 거부터 알아야, 그거부터 알아야 그 하나마저도 없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저 누구 말마따나 모아모아 닥치는 대로 이놈이 (가슴을 짚어 보이시며) 하는 거니까 이놈이 해결할 수 있고, 이놈이 하는 거니까 이놈이 성사를 시킬 수도 있고, 이놈이 하는 거니까 이놈이 우울한 것도 우울치 않게 할 수도 있고, 즐겁게도 할 수 있고, 아주 비관을 사게도 할 수 있는 이놈이 바로 그놈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열심히 이 공부를 해서 뭐, 누구 주는 게 아니니까, 여러분이 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라와 국민 아니, 세계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반의 중생들, 그런 사람들을 다 건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실천을, 궁행을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돼야만이 나도 좋고 싱긋이 웃을 수 있고, 여러분도 좋고 싱긋이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도리를 통달한 분이 한 번 웃는데, 이 우주법계가 다 웃는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나한테 질문할 게 없습니까? 만약에 이 대답을 한 번 하면 내 상을 주죠, 또. 우리 스님네들은 말고요. 과거가 현실이고 현실이 과거라면 어떤 게 옳겠습니까? (부축을 받으면서 나오고 있는 여신도를 보시며) 상 받으려고 애를 쓰네. 허허허. (대중 웃음)
▲신도3(여): 스님, 저는 대구 사는데요. 스님, 그 질문하신 그것은 현재 아닙니까? 현재. 그런데 스님 제 말을 잘 못 알아들으시겠죠. 제가 사고가 났습니다, 교통사고. 87년 7월 15일날, 교통사고 났거든요. 그래서 제 말이 그렇습니다. 스님, 이해하세요. 스님이 질문하신 그 대답은 현재 아닙니까?
▲스님: 현실이라고?
▲신도3(여): 네.
▲스님: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이시고) 그렇게, 그렇게 물질세계에서 우리가 상상해서 지금 현재 돌아가는 걸 보고 말하는 건 아는 게 아닐세.
그전에는 땅속에 씨를 뿌려서 자라게 했고 싹이 나오도록 10년, 20년, 30년 이렇게 해나왔는데, 인제는 좀더 거름도 줘야겠고 좀 북도 돋아줘야겠고, 이러니까 하나하나가 인제 이렇게 나오기 시작을 하는데 여러분이 그릇이 커져야 나도 그릇이 커질 거 아닙니까? 여러분이 작으면 나도 작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죠. 만약에 건방지게, 요만한 (물컵을 들어 보이시고) 그릇에다가 한 드럼통을 붓는다 해봤던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요 종지라면 나도 종지일 수밖에.
공부들 열심히 해서, 지금 현재의 가정을 열심히 이끌어가고, 조화를 이루고 화목을 도모해서, 항상 마음을 부드럽게 가지고 부드럽게 말해줄 수 있고, 모든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내 탓으로 돌리고 남을 원망하지 말고, 앞으로 젊은 사람들도 그렇게만 해나갈 수 있다면 큰 대지를 얻을 수가 있어요. 그 반면에 모든 산천초목을 다 근본으로 마음에 두고 양식 삼아 정말이지 여러분은 대성공을 할 수 있는 그런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스님이 팥죽을 쑤다가 팥죽이 부글부글 끓으니까 그거를 주걱으로다가 “요놈도 문수! 요놈도 문수! 요놈도 문수!” 그러고 주걱으로 쳤답니다. 그랬듯이 여러분은 이 속에 지금 악업 선업이 잔뜩 끓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울 지어서 악업 선업이 속에서 들입다 나오는 거는 어떤 사람 어떤 솥에서 방울방울 지어서 나오는 것입니까? 여러분 팥죽 솥에서 팥죽이 끓는 소리죠. 그러니 그것도 그 사람이 한 거고 그것도 그 사람이 한 거고, 그 팥죽 하나하나 방울방울 올라오는 거 이런 거 치미는 거, 보고 듣고 비위 상하는 거, 나라를 원망하고 또 시대를 원망하고, 내 가정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온통 친구를 원망하고, 이렇게 하다보면 이것은 바로 넝마밖에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갈갈이 찢어진 넝마.
그러니 모든 것을 거기다가 맡겨 놓고 ‘네놈이 이끌고가는 거니까, 내가 속에서 불화가 일어나도 바로 네놈이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이니까.’ 하고 거기에 맡겨 놓을 때 비로소 행복감이 젖어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인물이 돼서 나중에는 수천 수만을 이끌고 간다 하더라도 한 명, 자기 발로, 즉 말하자면 이런 거 있죠. 수천 명을 끌고 간다 하더라도 하나도 걸림 없이 끌고 갈 수 있다. 돈벌레가 다리가 그렇게 많아도 하나도 거침없이 끌고 갈 수 있다 이런 소리나 똑같습니다. 그게 내 발이니까. 내 마음이요 내 발이요, 바로 내 마음내는 것이니 그대로 둥글게 모가 안 나고 여여하게, 그 돈벌레가 다리가 그렇게 많아도 그 어디 걸리지 않고 가듯이….
이 마음이라는 건 바로 실체가 아니어서 큰가 하면은 작고, 작은가 하면 큽니다. 여러분 사계절도 사계절 나름입니다. 보세요, 가을이 돼서 장마가 크게 드는 때도 있고 적게 드는 때도 있고, 사람이 많이 피해 보는 때도 있고 적게 피해를 보는 때도 있습니다. 이게 고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가을도 가을 나름이요, 봄도 봄 나름이요, 겨울도 겨울 나름이다 이겁니다. 여름도 여름 나름이고. 그러니 여러분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여러분이 마음으로 지어서 업보를 만들고 유전을 만들고 인과를 만들고, 그저 이 세균도 업신여기고 저런 지렁이도 업신여기고….
여러분 뱃속에는 지렁이도 있고 전부 있습니다. 여러분 뱃속에 없는 게 없이 모습도 아주 다양하게 가지고 있으나 그놈들이 소임을 맡아가지고 운행을 해주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아주 떳떳하게 이렇게 사랑하고 뭐 하고 뭐 하고 이러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업신여기겠습니까? 여러분이 저 벌레를 보면 아주 징그럽다고 하죠. 나도 그랬습니다. 지금도 모습은 그렇겠죠. 그러나 마음이야 어찌 둘이겠습니까?
또 이런 게 있죠. 마음이 착하고 어질고 참 욕심 없는 사람이 돈을 왕창 벌었을 땐 남하고 같이 나눠 쓰지만, 마음이 강하고 아주 욕심 많고 그냥 못된 사람이 돈을 왕창 벌면 그거는 허튼 데다 쓰는 겁니다. 나쁜 짓만 하죠. 그렇듯이 우리 인간만 그런 게 아니라 저 짐승들도 모두 그렇죠. 그래서 이슬은 아주 참 감로수와 같은 물인데, 그 독있는 독풀이 빨아들이면 독이 돼버리고 말아요. 그런데 약풀이 마시면 약이 된다 이거야, 사람을 살리는. 네? 이러니 누구 탓입니까, 이게 다? 다 여러분 탓이지. 이 모두가 여러분이 사람 업신여기지 말고 항상 가정에서도 배신을 당했다 하더라도 아들이 공부를 잘 못한다 하더라도, 어떠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내탓으로 돌리라는 애깁니다.
지금 여기 선원에는 정신이 좀 잘못된 이러한 분들도 많고 백혈병이니 또는 골수암이니 또는 무슨 암이니 속앓이니, 뭐 별 병이 다, 병원에서 못 고치는 병들을 다 가지고 여기 재료로 삼아서 옵니다. 그러나 그게 재료지 여기에 의사가 있어서 병 고쳐주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재료로 삼아서 거기서 나온 거니까 거기다가 맡기고 거기서 해결해야지 누가 해결을 합니까? 몸속에도 중생들이 소임을 맡아가지고 다 하고 있는데 모든 자기입니다, 자기. 여러분 몸속에 있는 그 하나하나의 세균이 여러분이 아니고 딴 분입니까? 그러니까 각각 다 소임을 맡아가지고 하는데 거기서 파업을 일으켜서 잘못한 거라면 거기서 가라앉히고 거기서 낫게 해야죠. 안 그럴까요? 그래서 70% 정도는 우리가 감당해야 하지 않나 이렇게 봅니다.
그전부터 말을 하지만 여러분, 잘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몸이 피곤하고 병이 들면 인간이 허무하고 정말이지 살 맛이 안 나고 죽고만 싶고 허망하기만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허망한 게 아닙니다. 이 세상만사가 무상(無常)한 것을 알면서 도리어 이가 앙 다물어지면서 나는 이 도리를 알아야겠다는 그 각오가 뚜렷하게 섭니다, 오히려. 언젠가는 아파서, 언젠가는 사대(四大)가 흩어져서 허망한 게 아니라 원점으로 돌아갈 때 한데 모였다가, 구름이 한데 모였다가 흩어져서 딴 구름하고 또 다시 모이듯이, 인간도 사대로 흩어져서 바람으로 물로 불로 흙으로, 이렇게 흩어져서 원점으로 도로 돌아갔다가 다시 부모의 뼈와 살을 받아서 몸을 받되 그것이 한데 모여서 거기 가서 다시 또 태어나서 인간으로 성장이 되니깐요.
인간뿐만 아니라 마음을 잘못 썼다 하면 소로도 태어나고, 독사로도 태어날 수 있고, 개로도 태어날 수 있고, 만약에 마음을 잘 썼다면 사람으로 태어나되 장관으로도 태어날 수 있고 대통령으로도 태어날 수 있고, 이 세상을 다 누빌 수 있는 그런 통달한 성인이, 성자가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거 정말 여러분의 마음에 달린 겁니다. 그러니 그 마음 마음, 그 마음이 천차만별의 이 모든 살림살이들을 들이고 내는데 ‘그놈이 하는 거로구나.’ 하고 믿고 거기에 맡겨 놓고 좀더 한 걸음 뛰어넘을 수 있는, 도량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그러한 여분을 가지고 지혜를 가지고 좀더 이끌어보십시오.
늙으면 이 몸뚱이는 쇠약해지죠. 저 나무도 늙어서 고목이 되면 껍데기가 흐치흐치해지고 진물이 나고 그래요. 사실은 제가 채공도 해보고 공양주도 해보고 또는 불목도 해보고 여러 가지를 했습니다. 안 해본 것 없이 그렇게 어려서부터 했죠. 물지게를 안 졌나, 물지게 지는 건 그냥 한 번 이렇게 지는 게 아닙니다. 일전을 가지고 가면 오푼에 한 통씩이니까 그 일전을 가지고 가면 한 지게죠. 한 지게를 받기 위해서 줄을 서서 그걸 받아서 지고 와야만 했습니다. 지금처럼 샤쓰가 있고 신발이 올바른 게 있었다면 고생도 덜했을 텐데, 그런 거를 사서 떨고 섰다가 그거를 지고 오면 지고 오는 대로 엎질러지면 그 귀한 물을 엎질렀다 이거죠. 신발은 반짝짜리 ‘게다’를 끌어야 하고 이러한 문제들이 너무 내 인생을, 그렇게 채찍들이 가차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럴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한 줄 아십니까? 하나도 누구 원망을 안 했습니다. 단 “엄마!” 이렇게 부를 거를, 이 속으로 “아빠!” 그러고는 아빠 한마디 목이 메어서 불러놓고는 우는 거죠, 뭐. 어쩌겠습니까? 그 나이에. 아홉 살부터 말입니다. 세상을 그렇게 하다보니까 나 같은 사람도, ‘어떡하면 있는 사람 거를 훔쳐다가 그 고생하는 사람한테 몰래 밤중에 갖다가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굶고 부황이 났을 때 이거를 훔쳐다 주어서 거기다가 갖다가 놓으면, 그거를 아침에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허허허, 이런 엉뚱한 생각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을 허옇게 샜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정말 하고자 하는 일이 밀고 나가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거를 나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그랬으니깐요.
이 무심(無心) 도리라는 것이 전체…. 그거를 보이지 않는데, 내 몸이 보이질 않아야 가지고 가지 않느냐 이겁니다. 내 몸이 보이는데 붙잡히지 그게 붙잡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붙잡히지 않는 그런 도리를 아주 밤이면 밤새도록 잠을 안 자고는, 그냥 드러누울 수가 없습니다. 너무 눈물이 흐르고, 세상이 각박하다보니까는 먹을 것이 제대로 있습니까? 입을 것이 제대로 있습니까? 신을 것이 제대로 있습니까? 그런데다가 부모 밑에서 사는 사람들은 좀 낫겠지만 나야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가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나는 거지가 아니라 돈 몇 푼 주는 것도 받지 않았죠. 그저 다만 얻어먹은 거는 간장물밖엔 없었습니다. 가다가 쓰러져도 그대로 인생이 한 번 죽는 거, 죽으면 죽는 대로 살면 사는 대로 그냥 걸어갔을 뿐이죠. 나한테 닥치는 거 마다할 수도 없는 거고.
그러니까 어느 날 그러더군요.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조그마한 초립동이가 아니, 조그마한 동자가 행전을 상그렇게 매고 키 하나를 들고선 허공에 나섰습니다. 그것이 은사가 키 하나를 들려서 내보낸 거죠. 그거를 영 스무살이 되도록 몰랐다가 그게 의문이 났습니다. ‘키 하나를 줘서 내보내다니 그게 참, 그게 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벼는 찧어놨으나 까부르질 않아서, 닦아라 이 소리지. 벼는 다 절구질을 해서 찧어놨으나 아이, 까불러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까부르질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키 하나 줘서 내보냈을 수밖에. 그 어린 게 키 하나를 들고 사막 같은, 엊그저께 그 콜로라도에 갔을 때의 그 끝도 없는 사막과 같았어요. 끝도 없어요, 하여튼. 황야야, 그냥. 그 황야를 그때에 보는 그 심정이에요. 키 하나를 들고 어린 동자가 키 하나를 들고 나섰다 이겁니다. 갈 데 못 갈 데 뭐, 증명해놓은 무슨, 아니, 그 주막이 있습니까? 이 진리라는 건 주막도 번지수도 없는 겁니다. 끝도 기약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디 갈 자리를 마련해놓고 가는 게 아니라 무조건 키 하나 들고 그냥 나섰죠.
그 키는 누가 줬느냐고요? 허허허. 은사죠. 내 은사. 내 은사는 내 가슴에 있겠죠. 그렇게 해서 그것을, “저 키를 집어라.” 그 남이 내버린 키야. 이거를 하나 집고 그걸 몰랐단 말이야, 글쎄. “그 키를 집어라.” 집었지. “이걸 가지고 가자.” 가라 이거야. 그걸 들고서 가다가보면 또 바닥이 차면 그걸 깔고 앉고 그랬지 뭐, 모르니깐. 허허허. 나 참 재미있게 살았다고. 얼마나 인생을 재밌게 살았는지…. 여러분은 그런 맛을 못 볼 거예요, 아마. 못 봤을 겁니다. 그 어디 가서 앉았으면, 돌에 앉았으면 그것 깔고 앉았고, 풀에 앉아도 때에 따라서는 그것 깔고 앉고. 아, 그러다가 보니까 어느 날 그것이 홀연히, 그 키가 그 키가 아니라, 키가 아니라 키예요. 그러니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당신은 정말 이 세상을 줘도 바꿀 수가 없는 당신이요, 당신을 보고 싶소.” 하고서 하니까 “야, 색경을 봐라.” 그래요. 허허허, 그랬던 거라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공부를 하다가 그렇게 한 것도 이것이 무슨 뭐 경을 보고 설법을 듣고 뭐, 절집에 왕래를 자주 하고 이랬어야 알지. 그래서 어느 큰스님을 찾아가서 점검을 자꾸 했던 거지요. 내가 그렇게 발부터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여러분도 모두 발부터 들어서지 않아요. 이건 그냥 결사적으로 발부터 들어서야지 둘이 아닌 까닭에 너는 너고 나는 나기 때문에 발부터 들어서야 된다 이 소리예요.
그런데 모두가 둘이 아닌 까닭에 따로따로, 모습은 따로따로 돼있는 거예요. 저 봐요. (천정의 전등을 각각 가리키시고) 셋이 다 따로따로 있잖아요? 그렇지만 전력이 똑같은데 어찌 따로따로 있는 거냐 이거지요. 전력이 없다면 저거 빈 전구밖에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척척 떼버리겠지요. 마음대로들, 이건 자유니까요, 공부를 하고 못 하고는 자유예요. 그러니까 먼저 들어오고 나중 들어오고 그게 없습니다. 이 선맥을 이어받는 데는 나중 들어오고 먼저 들어오고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공부 열심히들 하십시오.

※위 법문은 대행스님 법어집 「한마음」의 내용 중에서 45호를 발췌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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