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으로 인류사가 더럽혀져 가고 있다. 이라크 포로에 대한 미군병사의 학대 파문에 이어 미국인 인질에 대한 이라크 저항세력의 무자비한 보복 살해 사건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어떻게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게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삶의 철학과 가치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로 혼란스럽다. 물론 전쟁터에서의 가치에 대한 판단과 행동은 현실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겠지만 동물에게 조차 차마 하지 못할 짓을 인간끼리 하고 있다는 현실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세계는 전쟁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은 수많은 인명과 인연있는 생명을 앗아간다. 특히 전쟁 속에서의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노약자들은 무방비 상태 속에 노출되어 이유 없이 목숨을 빼앗기고 희생을 강요당한다. 체첸과 유고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스러져 갔다. 무엇이 전쟁의 포화 속에 죄 없는 영혼들을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게 만든 것일까. 자유와 정의라는 가면을 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불러온 결과는 아닐까.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한국전쟁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 얼마나 많은 이산가족을 낳았는가. 우리는 아직도 가족의 생사를 몰라 눈물을 흘리는 전후 1세대를 보고 있다. 전쟁의 비극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러한 비극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국가도 위정자도 절대 책임을 질 수 없는 것이다. 무고한 시민만이 전쟁의 비극을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갈 따름이다. 이러한 전쟁의 비극을 종식시킬 방법은 무엇인가? 어떤 경우에는 인간의 영혼을 맑게 할 종교가 전쟁을 불러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종교와 이념이라는 커다란 명제 때문에도 싸우지만 때로는 사소한 일로도 싸운다. 심지어 축구 때문에 국가간 전쟁을 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가장 비합리적인 수단인 폭력의 행사를 뛰어넘어 가공할만한 무기로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스스럼없이 자행하고 있는 현실이 두렵기만 하다.
그 이유 중에 국가간 경제적·상업적 이익 추구라는 속셈이 있을 때는 더욱더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으로 평화스럽고 자비스러운 세상을 원하고 있다. 또한 상생의 삶을 갈구한다. 불교는 바로 평화와 자비, 상생의 사상이 담긴 가르침이다. 세상을 보다 살기 좋고 맑게 하는 것은 불교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종교들이 행해야 할 의무일 것이다.
얼마 전 개신교의 조용기 목사가 동국대 불교대학원 특별강연회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다른 나라와 달리 종교전쟁이 나지 않은 이유는 불교가 장자종교로서 타종교와 적대적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굳이 그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땅의 모든 종교가 서로 화합하여 인류의 평화를 기원해야 할 때이며 불교는 이에 앞장을 서야 할 시대적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 얼마 후면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게 된다. 올 부처님 오신날을 축하하는 대부분의 행사가 평화와 나눔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한다.
이제 이웃과 이웃이, 남과 북이, 그리고 국가와 국가가 이념과 종교와 서로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상생하는 세상을 기원한다. 이 혼란한 세상이 부처님의 자비로 평화를 되찾고 인류공존의 길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절실해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