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자신을 보는게 생명 보는 것
우리의 본면목인 생명을 접하고자 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많은 수행방법들이 이야기되고 있으며, 요즘 은 과학자들마저도 불법을 과학과 연결하여 굳이 설명하고 또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려 한다. 그저 마음공부를 하고자 하는 이들로서는 무엇이 정말 좋은 방법인지 혼동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염불, 기도, 참선, 명상, 고행 등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생명의 본면목을 알아차리는 가장 실제적인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면 이 세상이 본래 우리 자성과 별도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원래의 우리 모습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상의 삶을 떠나서 그 무엇도 따로 없음을 생명을 향한 자신 마음공부의 첫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 그런 자세가 되어 있다면 눈을 들어 밖을 보라. 이미 타인을 포함하여 모든 것은 그대로 부처요, 진리이기에 굳이 공부하는 이가 그나마 공부거리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외에는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여 본면목인 생명을 알고자 한다면 자신을 돌아보는 것 외에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이다.
즉 마음공부의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요, 자신의 발밑을 살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모든 수행 방법의 뼈대이니 어떤 상황이나 경계에 있어서도 밖으로 구하지 말며 스스로 되돌아보기에 힘써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들은 자신을 되돌아 볼 때 어차피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관점을 떠나서 볼 수없는 것이기에 한계가 있고 따라서 아상(我相)없이 자신을 보아야 한다고 말들 하지만 이는 매우 관념적인 이야기이다. 당연히 금강경에 있듯이 사상(四相)을 포함해서 모든 상이 실체가 없이 허망함을 알면 된다. 하지만 자신을 되돌아 볼 때 아상이 없으면 보고 말고가 없는 것이다. 그저 그러할 뿐이다. 내가 서있는 이 자리를 솔직히 인정하고 출발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에 마음공부를 하는 이들은 매 순간순간 자신을 돌이켜보아 밖을 향한 자신의 아상이 점차 녹도록 하는 것이다. 간화선의 공안 공부라는 것도 항상 작용하는 나의 허망한 아상이 저절로 힘을 잃도록 진리와 생명에의 문을 여는 문고리 하나를 걸어 그것을 통해 문을 열고 나아가는 것이다.
공부하는 이들은 자신의 수행방법을 통해 오직 행주좌와 어묵동정 중에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자체가 곧 깨어있음이요, 그것이 곧 여여(如如)함이지 결코 어떤 특별한 상태나 경계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되돌아봄으로서 자신의 아상을 놓아가는 것만이 마음공부에서 가장 요긴하고도 구체적인 방법이요, 이것이야 말로 두두물물이 그대로 화두로 무르익게 되는 돈교(頓敎)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