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지혜를 믿고 발심하여 깨달음을 성취하고, 그 지혜를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이것이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불교에 입문한 자는 누구든지 우선 깨달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깨달음을 얻는 길에 자각(自覺)과 신앙(信仰)이라는 두 문이 있습니다. 자각은 자신의 불성(佛性)에 대한 인식으로 스스로 닦아 연기(緣起)의 세계관을 통찰하여 정각(正覺)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신이 고뇌하는 범부로서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자비광명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닦음과 자비광명에 의지함, 두 경우 모두 부처님의 지혜에 대한 진실한 신심을 바탕으로 행하는 것이며, 인생의 근원적이고 전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불교의 수행문은 그 방법론이 다양하고 서로 자파의 수행법이 제일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자신의 근기를 어떻게 헤아리고, 어느 문을 선택해야 옳은 것인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라의 원효도 대소승 경전이 함께 유입되고, 유학파에 의해 새로운 이론이 도입되던 시기에 이런 점을 매우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원효는 34세 무렵에 마음법을 깨닫고, 38~45세 사이에 요석 공주와 인연이 되어 설총을 낳았습니다. 그 후 외부의 비난을 감내하며 소성 거사(小性居士)라 자칭하고, 오로지 저술과 불교 대중화에 전념하였습니다. 아마 이 시기에 불법의 큰 뜻과 신행체계를 확고히 세운 것입니다.
원효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불교의 큰 뜻이 상홍불도(上弘佛道: 혹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下化衆生)에 있음을 모른 바가 아니다. 문제는 추상적으로 말하지 말고, 구체적 실천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여 신행체계를 뚜렷히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원효는 자신의 깨달음과 더불어 <대승기신론>을 중심으로 수많은 경론을 열람하고, 부처님의 일대교설에 대하여 불교는 부처님의 지혜를 믿는 종교이며, 그 믿음의 궁극은 ‘일체 경계는 일심(一心)인 지혜’라 하였습니다. 일심은 믿음의 대상인 동시에 마침내 성취해야 할 법(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유일한 법으로써 일심을 세우고 일심이문(一心二門) 삼대(體相用)의 신행체계를 정립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이 정립한 신행체계에 의하여 스스로 닦아 나아가거나, 자비광명에 의지하거나, 모든 수행문과 불법에 귀의한 일체 중생이 다 함께 보리심의 원(願)을 품고 일심의 광대한 바다로 향하도록 화쟁(和諍)과 회통(會通)의 논리를 전개하였습니다.
‘일심 이문 삼대’(一心二門三大)에서 일심(중생심 자체)이란 마음의 대상이자 성취해야 할 법입니다. ‘이문’에서 진여문(體大)은 불생불멸의 심체이며, 생멸문(相大)은 여래장 성공덕상이자 진여의 염상입니다. 마지막으로 ‘삼대’는 앞의 체대, 상대와 함께 용대(用大)를 말하는데, 이는 여래장의 불가사의한 업용이자 진여의 정용입니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들어가는 수행문은 모두 여기에 포함됩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깨달음을 얻기 어렵습니다. 일심이문 삼대의 뜻을 이해하여, 어떻게 들어가고, 무엇을 닦는가? 이것이 불교의 신행체계입니다. 신행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원효의 독백은 오늘날 한국 불교계에서는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양산 정토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