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하던 시절로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자신 꾸짖고 정진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던 아난 존자가 어느 때 탁발하러 성에 나갔다가 구걸하는 어린 거지 아이를 만나게 되었는데, 어찌나 불쌍했던지 그를 데려다 출가시켜 동자승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름을 삘로띠까라 부르게 되었는데 그 까닭은 그가 아주 초라한 옷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삘로띠까는 자기가 입던 더러운 누더기와 찌그러진 밥 그릇을 보자기에 싸서 수도원 뒷산의 나무 가지에 매달아 두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는 정식 비구가 되었고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삘로띠까는 때때로 이와 같은 수행자의 생활보다는 구걸하며 살던 때가 오히려 좋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그리움과 함께, 지금이라도 계를 반납하고 다시 옛날의 생활로 돌아가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삘로띠까는 수도원 뒷산으로 올라가 매달린 누더기 옷과 찌그러진 밥그릇을 쳐다보며 준엄하게 자신을 꾸짖었습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자여 너는 어찌 여태까지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잘 먹여주고 잘 재워주며 존경까지 해주는 이곳을 떠나겠다고 하느냐. 너는 다시 저 더러운 누더기 옷을 몸에 걸치고 찌그러진 그릇을 손에 든 채 구걸을 다니면서 온갖 괄시와 천대를 받겠다는 것이냐.”
그는 이런 말로 자신을 채찍질 하여 마음의 갈등을 자주 일으켰기 때문에 수도원 뒷산을 자주 오르내렸고 이를 이상히 여긴 다른 비구들이 물으면 스승을 뵈러 갔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가 마음이 또 산란해져 뒷산을 올라가 누더기와 밥그릇을 쳐다보고 자신을 책망하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나의 마음을 지켜주는 저 옷과 밥그릇을 보러 이곳까지 꼭 올 필요가 있을까, 여기를 찾아 올 것이 아니라 수도원에 앉아서 이들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꾸짖자.” 수도원에 돌아간 그는 그 뒤로 항상 갈등이 일 때마다 누더기 옷을 연상하였고 마침내 이 방법이 수행 주제가 되어 오온이 무상한 것임을 깨달아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어 가지 수행에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람의 경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중생의 마음은 항상 과거에 살아왔던 방식이나 습관으로 돌아가려는 버릇이 있습니다. 실제로 수행을 하다 보면 지금 내가 왜 이런 공부를 하나 과거에 이런 것 모르고도 잘 살았는데 하면서 수행이고 뭐고 다 그만 두고 싶은 때가 많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수행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스승이나 수행방법은 어디에나 존재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삘로띠까가 자신이 구걸 하던 시절의 옷과 그릇을 스승으로 삼고 수행의 주제로 삼았듯 마음먹기에 따라 주변에서 얼마든지 자신의 마음을 닦을 수 방법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멀리서 찾으려고만 하지 말고 주변에 흔히 있는 현상들을 주제로 삼아 마음을 조절하고 집중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유마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