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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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서울대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삶과 죽음에 있어 자연사·자살·안락사라는 형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이러한 선택에서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하는 질문이다. 그 질문은 ‘과연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으며, 또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점으로서 참으로 중요한 말이지만, 과연 나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말하는 이들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이 자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무조건 수용한다’는 것 외에 다름 아니다.
누구도 완전한 인간은 없다. 실수도 하고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이는 우리가 원래 그러함을 알아 자기가 ‘그러한 모습 그대로 온전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 자리(차안)를 떠나 가야할 곳(피안)이 따로 없음을 알 뿐이다.
지금 이 자리의 나는 과거 살아온 내 삶의 결과이다. 따라서 지금의 나를 수용하는 것은 나의 과거를 그대로 수용한다는 말이고, 지금의 내가 이룰 미래의 나 역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누가 잘나고 못나고가 없다. 오직 엄숙한 내 몫으로서의 삶이 있을 뿐이다.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삶이 객관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던, 결코 스스로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미 그의 삶은 온전한 것이기에 더 나은 결과를 낳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어떤 결과를 얻어도 후회가 없고, 후회 없는 삶이기에 만족할 뿐이다. 단 후회 없는 삶이 결코 무엇을 완벽하게 해냈거나 매우 좋은 결과를 얻어서 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편 불완전한 자신을 그대로 수용할 때 주변의 다른 이들도 평등하게 수용할 수 있다. 모자란 자신도 그대로 수용할 수 있기에 비로소 너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으며, 동질성을 바탕으로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 자신을 수많은 기준으로 정죄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그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자신의 삶을 후회하면서 동시에 타인을 비난하고 세상을 원망한다. 스스로 힘든 삶의 몫을 짊어지니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수용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많이 부족한 나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
오직 깨어있음으로 수용할 수 있다. 깨어있음이란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이다. 동시에 각자(覺者)란 깨달음을 얻은 자가 아니라 깨어있는 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깨달음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깨어있는 자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이 이대로 여여(如如)하다는 것을 알아 부족한 자신을 아무 조건 없이 수용하여 진정 사랑하게 된다. 오직 깨어 있으라. 그리하여 서로 (나와 나, 나와 너) 사랑할지니.
200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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