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敎 겸비…70년 수행 전념
“어린 시절 모셨던 스님들을 생각하면 하루도 게을리 살 수가 없어. 먹을 것도 제대로 없었던 궁핍한 시절이었지만 엄격히 계율을 지키며 수행에 매진할 정도로 근기가 수승하셨지. 아직도 그 스님들을 마음속의 사표로 삼고 있어요.”
서울 약수동 미타사 칠성각 창일(昌一) 스님은 70년 이상 절집에서 살면서 수행에 전념해 왔지만 아직도 시봉했었던 큰스님들에 비하면 별로 한 일이 없다고 겸손해 하신다. 그러나 스님의 주름진 얼굴과 겸손한 말투에서 세수 80이 넘은 수행자의 깊은 수행력을 느낄 수 있었다.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난 창일 스님은 6살 어린 나이에 미타사에서 계택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스님은 어린 시절 절집의 생활이 재미있었다고 회상한다. 공양간에서 밥 짓는 일부터 예불을 올리는 일까지 모두가 힘들었지만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었다고 한다.
재미있고 신이나는 일은 오래 기억되는 법. 스님은 아직도 어린 시절 은사 스님에게 전수받은 사찰 음식 만드는 법, 전통 범패 의식 등을 아직도 그대로 행하고 계신다.
스님의 상좌인 성연 스님은 “아직도 화엄경, 금강경 등 다수의 경전을 외우시고 사찰 종무와 관련된 기관의 전화번호를 모두 암기할 정도”라며 “산중의 사찰에서도 옛 것을 많이 잃어버린 요즘 우리 스님은 ‘살아있는 전통 문화 전수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1945년 서울 안국동 선학원에서 만공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한 스님은 1959년부터 10년간 합천 해인사 관음암, 홍제암에서 감원(암자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소임)을 맡으며 종무 행정을 경험했다. 또 해인사 승가대학에서 지관 스님에게 사사를 받으며 교학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불교는 머리속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해인사 삼선암 선방 등에서 10년동안 참선에 전념하기도 했다.
이후 스님은 1968년 양산 상북면 소토리에 성림사를 창건했고, 1979년부터 현재까지 미타사 칠성각에 주석하며 미타사 중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창일 스님은 은사 스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 크다고 토로하신다. 그래서 상좌들에게도 남다른 애정을 갖고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다.
10여명의 상좌 모두를 젊은 시절부터 전통 강원에 보내 훌륭한 스님들과 인연을 맺게 해 주었고 강원 졸업 후에는 일반 대학에 진학시켜 배움의 기회를 넓혀 주었다. 맏 상좌인 성림사 주지 성우 스님이 문학가로 활동하고 있고 대만에 유학한 성관 스님이 의정부에서 포교에 나서고 있다. 또한 성연 스님은 미타유치원 원장으로 은사 스님의 내리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성우 스님은 “스님이 상좌들에게 현대식 교육을 시킨 것은 수행자로서 갖춰야 할 품성과 지식을 습득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홍포하라는 뜻”이라며 “스님은 불교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며 어린이, 중고등부, 대학생 불자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으신다”고 귀띔한다.
김두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