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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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월 장자의 법문
앞에서 견고해탈장자는 선재동자에게 ‘집착하는 생각이 없는 청정한 장엄해탈’법문을 설하고 나서, 다시 그 성안에 있는 ‘묘한 달(妙月)’이라고 하는 장자를 소개하였다. 그 장자의 집에는 항상 광명이 있으니, 그에게 가서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도를 닦는 법을 물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선재동자가 묘월장자가 있는 곳을 찾아가 그에게 예배하고 나서 가르침을 청하자 묘월장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깨끗한 지혜광명(淨智光明)’이라고 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다. 나는 다만 이 깨끗한 지혜광명이라고 하는 보살의 해탈을 알 뿐이니, 저 보살마하살들이 한량없는 해탈의 법문을 증득한 것이야 내가 어떻게 알며, 그 공덕의 행을 말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묘월장자는 자기가 체득(體得)하고 있는 해탈의 이름만을 밝히고 있을 뿐으로 그 밖의 다른 설명은 없다. 장자가 ‘나는 오로지 이 깨끗한 지혜광명이라고 하는 보살의 해탈을 알 뿐이다’라고 한 것은 그가 깨끗한 지혜광명을 얻어서 그것을 근본으로 하여 대비이타의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생의 특성이 무지와 어두움이라면 부처님의 특성은 지혜로움과 밝음이다. 중생이 겪게 되는 온갖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무지하고 어두운 것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의 지혜 광명은 자기자신의 무지와 어두움을 물리쳐 줄 뿐만 아니라 주변 세계까지도 밝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 부처님의 성격은 비로자나(vairocana)라고 하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광대무변한 지혜의 광명이 부처님의 본질로 되어 있다. 비로자나불은 일체법에 정각을 이룬 대지혜(大智慧)의 부처님이다. 비로자나(vairocana)라고 하는 말이 ‘빛을 두루 널리 비춘다(vai 널리, 두루두루 rocana 빛을 비춘다고 하는 의미로서, 일반적으로 光明遍照라고 번역함)’라고 번역되는 것처럼 지혜의 빛이 모든 것을 두루 비춘다는 뜻으로서 부처님의 본질이 모든 존재의 진실을 아는 지혜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지혜는 우리들 중생의 근원적인 미망(迷妄)의 어두움을 비추어 없애는 광명으로 되어 작용하고, 그 광명은 모든 중생을 따뜻하게 감싸고 보살펴서 고뇌를 없애주는 자비로운 작용으로 되어 전개하는 참된 생명이다.
장자의 이름이 묘월(妙月)인 것은 지혜 광명이 훌륭하게 작용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장자의 자비스런 지혜 광명이 중생을 이롭게 해서 세간 중생의 미혹을 타파하기 때문에 이러한 명칭이 붙은 것으로 생각된다. 지혜의 광명은 깨달음의 지혜가 중생들의 무명(無明)의 암흑을 깨뜨리는 등 여러가지로 세상 만물에 이로움을 주는 작용을 한다. 깨달음의 지혜는 항상 어둠 속에서 작용한다. 그러므로 지혜 광명이 비추는 곳은 언제나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간 속이다. 이러한 지혜가 이른바 근본적인 지혜(根本智)를 얻고 나서 그것을 활용하여 다시 다양한 지혜의 작용을 일으키는 후득지(後得智)이다. 이 후득지가 방편바라밀을 성취하여 세간 속에서 훌륭하게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묘월이라는 명칭은 이 장자가 현실의 세간 속에서 어떤 것에도 구애됨이 없이 깨달음을 잘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문에서 ‘묘월장자가 머무르고 있는 집에는 항상 광명이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장자의 생활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묘월장자가 체득하고 있는 ‘깨끗한 지혜광명’이라고 하는 보살의 해탈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세속에 몸을 담고 살아가면서도 세속에 물들거나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보살의 이상이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세속에 물들어서 혼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또한 중생들의 삶의 터전인 세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거나 삶 자체를 비관하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자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나 삶의 자세를 가지게 되는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진리에 무지하고 어두운 것, 즉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밝고 힘찬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보다도 항상 마음을 밝고 지혜롭게 써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반야바라밀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세속에 몸을 담고 살아가지만 어떠한 집착과 망념이 없고, 자비심을 가지고 다양한 방편을 써서 중생들을 교화하고 구제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의 삶에는 언제나 광명이 넘치는 삶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묘월장자의 법문은 앞의 견고해탈장자가 설하는 ‘집착하는 생각이 없는 청정한 장엄해탈의 법문’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고 머무르고 있는 곳도 같은 성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200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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