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경전에서 인과응보의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지은 행위에 대하여 반드시 자신이 그 결과를 받는다 자작자수(自作自受)의 원리는 불자들로 하여금 착한 행위를 하고 나쁜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한다. 지은 행위에 대하여 바로 그 과보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 중에는 인과응보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 자들도 있다. 최근에 서양에서 과학적으로 윤회의 세계가 실재한다는 것을 밝히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소용이 없다. 흥미롭게도 <장아함경>에 속하는 <폐숙경>에 윤회를 증명하는 내용이 자세히 실려 있다. 이 경전에서 붓다의 입멸 직후 가섭이라는 제자와 윤회를 믿지 않는 왕자가 윤회를 둘러싸고 대론하고 있다. 붓다의 제자는 전생, 현생, 미래생이 있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 합리적으로 설득시키고 있다. 주요한 내용만 선별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가섭이 물었다. “어떤 연유로 내생이 없다고 말하는가?” 왕자가 대답했다. “저에겐 병을 앓아 매우 고생하는 친족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가서 부탁했습니다. ‘지금 그대는 나와 친족이고 또 10악업도 갖추고 있다. 만일 윤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대는 죽어 반드시 고통스런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분명히 지옥이 있다면 너는 마땅히 돌아와서 내게 말해 알려달라. 그런 뒤에야 믿을 것이다.’ 가섭이여, 그는 벌써 죽었지만 아직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 친족이라서 당연히 저를 속일 리가 없는데 오지 않는 것을 보면 반드시 내생은 없는 것입니다.”
가섭이 비유를 들어 대답했다. “국법을 어겨 사형 집행관에게 끌려간 죄인이 부드러운 말로 간수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놓아주시오. 고향의 모든 친족들을 만나 작별의 인사를 마친 뒤에 반드시 돌아오겠소.’ 바라문이여, 어떠한가? 저 간수는 기꺼이 그를 놓아주겠는가?”
왕자가 답변했다. “안 될 것입니다.” 가섭은 부연했다. “죄인이나 간수나 모두 같은 사람으로서 현세에 함께 살고 있는데도 오히려 놓아주지 않는데, 더구나 그대의 친족은 10악업을 갖추었으니 몸이 죽어 수명이 끝난 다음 틀림없이 지옥에 들어갔을 것이다. 지옥의 간수는 자비심도 없고 또 사람도 아니다. 그가 아무리 부드러운 말로 지옥의 귀신에게 요구하기를 ‘너는 잠시만 나를 놓아다오. 내가 세간으로 돌아가 친족들을 만나 작별 인사를 한 뒤에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한들 석방될 수 있겠는가?” 바라문이 대답했다. “안 될 것입니다.”
그래도 내생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는 바라문에게 또 어떤 다른 이유가 있어 내생이 없다 라고 하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저에겐 병을 앓아 위독한 친족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가서 부탁했습니다. ‘지금 그대는 나와 친하고 또 10선업도 구족하고 있다. 만일 윤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대는 이제 목숨을 마치면 반드시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만일 분명히 하늘의 과보가 있거든 너는 마땅히 와서 내게 말해 알려 달라. 그런 뒤에야 나는 믿을 것이다.’ 가섭이여, 그는 벌써 죽었지만 아직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 친족이라서 당연히 저를 속일 리가 없는데 오지 않는 것을 보면 반드시 다른 세상이란 없는 것입니다.”
가섭은 비유를 들어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더러운 똥구덩이에 떨어져 머리까지 빠졌다고 하자. 그 사람을 끌어내어 가루비누와 깨끗한 재로 여러 번 씻긴다. 다음에는 향탕(香湯)에 목욕시켜 여러 가지 고운 가루향을 그 몸에 뿌리고 거듭 씻긴다. 이렇게 세 번을 되풀이하고 향탕에 목욕시키고 가루향을 몸에 뿌리며 좋은 옷으로 그 몸을 꾸미고 온갖 즐거움을 누린다고 하자. 그 사람이 다시 더러운 똥구덩이로 들어가려고 하겠는가? 모든 하늘도 또한 그렇다. 이 염부리(閻浮利)의 땅은 냄새나고 더러워 깨끗하지 못하다. 모든 천신은 여기서부터 거리가 백 유순(由旬)이나 떨어진 위에서 멀리 사람들의 냄새를 맡지만 뒷간 냄새보다 더 심하게 여긴다. 그대의 친족은 10선(善)을 갖추었으므로 틀림없이 하늘에 태어나 5욕을 스스로 즐기며 쾌락이 끝이 없을 텐데 왜 다시 기꺼이 이 염부리로 돌아오려고 하겠는가?”
죽어서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내생이 없다 라고 주장하는 왕자의 주장에 가섭은 그렇지 않은 이유를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이렇게 설명하여도 내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생이 없다고 믿고 방종하게 살다가 죽을 때 만약 내생이 있으면 지옥에서 고생할 것이다. 내생이 있다고 믿고 착하게 살다가 죽을 때 설령 천상이 없다고 해도 손해볼 것은 없다. 그러므로 내생이 있다고 믿고 착하게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동국대 불교학과(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