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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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입법계품 <64>
견고해탈 장자의 법문

선재동자는 현승우바이로부터 남쪽의 ‘비옥한 밭(沃田)’이라고 하는 성(城)에 있는 ‘견고한 해탈(堅固解脫)’장자를 찾아가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도를 닦는 법을 물으라고 하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 성에 이르러서 장자에게 나아가 예배하고 나서 법을 설하여 주기를 청하자, 장자가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이 ‘집착하는 생각이 없는 청정한 장엄(無著念淸淨莊嚴)’이다. 나는 이 해탈을 얻고부터는 시방(十方)의 부처님 계신 데에서 바른 법을 부지런히 구하여 쉬지 아니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집착하는 생각이 없는 청정한 장엄해탈을 알 뿐이니 저 보살마하살들이 두려울 것 없음을 얻어 크게 사자후하며, 넓고 큰 복과 지혜의 무더기에 편안히 머무는 일이야 내가 어떻게 알며, 그 공덕의 행을 말하겠는가.”
견고해탈 장자의 법문은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매우 간략하다. 부처가 출생하는 법을 설하는 마야 부인에서부터 미래에 실제로 부처님이 되실 미륵보살에 이르기까지의 사이에 있는 열 사람의 선지식의 법문은 거의 모두 간략한 형태로 되어 있다. 그 까닭은 이 열 사람의 선지식들이 모두 부처를 출생시키는 법(法)만을 강조해서 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재동자는 이를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서 행하여야 할 법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하고 수습(修習)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견고해탈 장자가 설하고 있는 ‘집착하는 생각이 없는 청정한 장엄해탈’의 법문은 반야의 무상지혜(無相智慧)로써 모든 법을 장엄하여 일체법(一切法)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스스로 집착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문은 일체의 법에 대해서 정념(正念)을 수립함을 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견고해탈 장자는 정념이 확립되어 그릇된 관념이나 인식도 없고, 어떠한 마음의 혼탁함도 없다. 이와 같이 이 장자가 얻고 있는 해탈이 일체의 소지장(所知障)을 떠나 있기 때문에 ‘집착이 없다(無著)’고 하고, 번뇌장(煩惱障)을 떠나 있기 때문에 ‘청정(淸淨)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 장자는 이렇게 해서 이미 견고한 해탈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 장자의 이름이 ‘견고해탈’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집착하는 생각이 없는 청정한 장엄해탈’의 법문이 그대로 ‘견고한 해탈’이 되는 것이다.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집착과 망념(妄念)을 버리기만 하면 곧바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장자의 법문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해탈을 얻고부터는 시방의 부처님 계신 데에서 정법(正法)을 부지런히 구하여 쉬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집착이 없는 청정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곧바로 아무 곳에서나 부처님의 정법을 부단히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시방세계의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정법을 부단히 행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까닭은 무량무수한 집착과 망념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일체의 경계에 대해 집착하여 거기에 사로잡히고, 온갖 허망한 생각에 스스로 도취되어 허우적거리느라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집착과 망상을 버리기만 한다면 깨달음의 세계와 부처님의 세계가 즉시 펼쳐질 수가 있는 것이다. ‘시방의 부처님 계신 곳에서 정법을 부지런히 구하여 그만두는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은 항상 정법에 수순하여 진실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 외에 또 다른 진정한 인생의 목표가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견고해탈 장자가 살고 있는 성의 이름이 ‘비옥한 밭(沃田)’인 것은 집착과 망상을 버림으로써 지혜와 덕을 갖출 수가 있고, 그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선법(善法)을 자라게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집착과 망상이 없는 청정한 마음은 한없이 자유롭고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마음이다. 어떠한 특정한 모습을 가지는 일도 없이 이런 저런 경계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을 나타내면서 자연스럽게 순응해가는 마음이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유마경에서 설하고 있는 바와 같이 청정한 마음이 온갖 진실한 법을 낳는 도량이 되는 것이다.
이른바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부처를 이룬다고 하는 의미도 이러한 맥락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집착을 그치고 망념을 버리면 그대로 깨달음이 실현되고 부처를 이루는 것이 되는 것이다.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에서 수행을 통하여 갖추게 되는 부처님의 특징적인 덕성을 열 가지의 부처(十佛)로써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첫 번째로 ‘세간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각을 이루는 부처(安住世間成正覺佛)’를 ‘집착함이 없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도 견고해탈 장자의 법문과 서로 통하는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200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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