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만 달리면 되나?
드디어 고속철도(KTX)가 역사적 운행을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페인 그리고 일본만이 고속철도를 운행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는 온 국민이 자랑스러워야 할 쾌거임에 틀림없다.
고속철 KTX가 개통되면서 국민 모두 스피디한 ‘KTX경제시대‘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바뀌고 동서지역을 하나로 연결하며 새로운 복합상권으로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축해야 할 고속철도의 개통에 많은 비난의 목소리가 들린다. 대표적인 문제가 지나치게 수익성이 강조된 나머지 편의성이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일호 운행이 완전히 폐지되고, 무궁화호와 새마을호가 아주 큰 폭으로 축소되었다. 따라서 운행간격이 너무 길어 비싼 KTX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끔 조정해 버린 것이다.
철도청은 고속철에 투자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히고 있지만, 예전에 새마을호도 타기에 벅찼던 서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새마을호나 KTX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 분노하고 있다.
또한 운행하는 새마을호와 무궁화호조차 요금은 그대로이면서 정차역은 더 늘어나 또 다른 불만의 원인이 되고 있다. KTX를 이용하게끔 만드는 열차배정과 열차운용으로 빈축을 사고 있는 공공기업인 한국철도의 기업윤리가 땅에 떨어진 느낌이다.
원래 철도를 비롯한 전력, 통신, 수도, 도시가스 등 상품을 대량생산하는 경우, 규모의 경제로 인해 단위당 생산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여 소규모의 경쟁기업이 시장에 진입을 할 수 없게된다. 따라 자연독점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점현상을 규제하기 위한 처방이 기업의 국유화 즉 공기업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철도의 행정을 보면 공기업이라기 보다는 마치 민간 독점기업의 병폐를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KTX의 대체재가 바로 통일호와 무궁화호 그리고 새마을호인데 통일호의 운행폐지는 경쟁상품을 인위적으로 시장으로부터 퇴출시키는 행위이며, 새마을호와 무궁화호의 열차배정과 운용정책은 상품의 질을 변형시키면서 경쟁체제를 무너뜨리는 행위인 것이다.
이같은 경쟁체제의 붕괴는 곧 독점으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기업이 지양해야 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만약 효율성 마저 상실하게 된다면 그 비용은 결국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독점기업의 병폐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가격규제와 경쟁촉진정책의 도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가격규제정책으로는 고속철의 운임료를 현재의 할인제도 보다 다양하게 제공해야 한다.
전력의 경우 상업용 전기료와 가정용 전기료가 다르듯 고속철 역시 다양한 할인제도를 통해 다중가격제를 실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고속철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경쟁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즉, 기존의 무궁화호와 새마을호의 운행을 정상화시켜 KTX와의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기존의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그리고 새로운 KTX가 스스로의 수요를 창출해가면서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하고,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해 국민을 위한 충실한 대중교통의 선봉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