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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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지원 스님
‘정진·불사’ 후학들에 귀감

“세상사 일체가 다 부처님 법인데, 무얼 따로 얘기할까? 있는 그대로 만족하면 아무것도 괴로울 게 없는 세상이라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옆으로 고즈넉이 자리잡은 부산 동래구 보림사. 그곳에 조계종 전국비구니회 부회장인 지원(74·사진)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스님이 주석하는 보림사의 불사를 뒤로 미루면서까지 스님은 지난 15년 동안, 비구니 스님들을 위한 종합 수행공간인 경주 금련사 불사에 전념해왔다. 경주 동국대 학인 비구니 스님들의 기숙사이자, 노스님들의 보임처가 되고 있는 금련사는 총 4천 평 규모로 문수동(기숙사), 보현동(노스님 보임처), 달마동(선방), 비로동(법당), 공양실 등을 갖추고 있다. 금련사 건립의 중추적 역할을 해 온 스님은 사재까지 털어 가며 후학들을 위한 도량 건립에 혼신을 기울여 지난해에 불사를 마쳤다.
15년에 걸쳐 금련사 불사를 마치고서야 비로소 보림사 대웅전 불사를 시작할 엄두를 낼 정도로 온 마음을 기울여왔으면서도 스님은 끝끝내 한 것이 없다고 손을 내젓는다.
33년 전 부산 비구니 금련회 창립의 기틀을 다지고 오랫동안 회장을 역임한 스님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비구니 스님들의 힘을 모아 나갔다. 금련회는 젊은 비구니 스님들의 모임인 화엄회 결성의 모태가 되어 비구니 스님들의 위상과 역할 강화를 위한 초석이 되었다.
지원 스님은 스님이었던 고모를 따라 자연스럽게 불연(佛緣)을 맺었고 출가로까지 이어졌다. 스님이 출가를 하면서 스님 집안에선 4대째 비구니 스님이 배출되었다. 스님은 동산 스님을 은사로 비구니계를 받았지만 고모이자 스승이었던 지성 스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결코 화내는 법이 없었고 모든 것을 포용했던 자애로운 스님으로 기억되는 지성 스님처럼 지원 스님 역시 싫고 좋음의 분별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찍 은사를 여의고 지원 스님을 스승처럼 모시고 있는 조카상좌 상화 스님은 “말씀은 별로 없으시지만 반듯하게 사시는 모습 자체가 많은 가르침을 준다”며 “허공에도 귀가 있고 눈이 있어 모든 게 인과법에 의해 돌아가니 자기 양심에 적합하게 살면 된다는 스님 말씀을 늘 경책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운문사 승가대학 1회 졸업생인 지원 스님은 “그때가 가장 좋았어. 임재응 스님을 강사로 모시고 와서 50여 명의 대중들과 함께 배웠는데 낮에는 풀 베고, 밤에는 산불 감시하느라 몸은 고달팠지만 가람수호하고 공부하는 즐거움에 힘든 줄 몰랐지”라며 예전의 학인 때를 회상했다.
53년 전부터 지금까지 보림사에 머물며 새벽예불, 주력, 참선, 독경을 빠뜨리지 않으며 말로서 가르치기보다는 행(行)으로 사표가 되는 스님은 상좌들에겐 엄격한 스승이다.
“몸의 안일을 구하거나 명예를 위해 출가 한 게 아니잖아. 그러니 좀 더 부지런해야지. 속가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요즘 힘들다고 야단들이지만 더 어려웠을 때를 생각하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좀 더 부지런히 정진해야 합니다.”
천미희 기자
200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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