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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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지해 있노라”
한 때 텔레비전에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모 신용카드 회사의 광고를 본적이 있었다.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멋진 자동차를 타고 아름다운 곳에 가서 휴식을 취하라는 내용의 신용카드 광고였다. 그러나 막상 어디로 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단계가 되면 고민이다. 휴일이 되면 어느 곳이나 붐비기 때문에 나서기가 무섭다. 목적지까지 거리에서 낭비해야 하는 시간, 도착하고 나면 수 많은 인파에 밀려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지친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일만 할 수 없다. 쉬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쉬어야 하는 지를 모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분주하다. 조금도 쉴 새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외국에 살다가 귀국한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너무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급한 생활 방식은 여기 저기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식당에 가서 주문한 음식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야단이 난다. 음식이 나오면 재빨리 먹어 치운다. 이런 음식 습관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 푸드의 인기는 현대인이 얼마나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다. 서구의 어떤 철학자가 느림을 찬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 사람에게 국한된 말이 아닌 것임에 틀림없다.
<불설앙굴계경>에 전하고 있는 붓다와 앙굴리말라와의 대화는 휴식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붓다가 사위성에 있을 때의 일이다. 많은 비구들이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을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각기 손을 잡고 대성통곡을 하고 울부짖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나라에는 아주 흉악한 도적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앙굴리말라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죽이고는 각각 그 손가락을 하나씩 끊고 묶어 꽃다발을 만들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앙굴리말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흉악한 도적에 관한 이야기를 비구들로부터 들은 붓다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앙굴리말라는 멀리서 붓다가 오는 것을 보고 즉시 허리에 찼던 칼을 빼어 들고, 붓다를 향하여 달려 갔다. 그 때 붓다는 멀리서 앙굴리말라가 오는 것을 보고는, 곧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앙굴리말라는 붓다를 쫓아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달렸으나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앙굴리말라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의 달음질은 말도 따라잡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저 사람은 뛰지도 않고 걷고 있는데도, 나는 죽을 힘을 다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구나.” 앙굴리말라는 지친 나머지 멈추어 서서 앞서가는 붓다에게 “멈추어라”라고 고함을 질렀다. 붓다는 발길을 멈추지 않은 채 “나는 언제나 정지해 있노라. 그러나 그대는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앙굴리말라는 순간 기이한 느낌이 든다. 자기는 서 있고 저 붓다는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반대로 말하고 있는 것일까.
붓다는 설명했다. “앙굴리말라여! 내 마음은 언제나 잔잔한 호수처럼 움직임이 없다. 왜냐하면 여래(如來)에게는 남을 해칠 생각, 미워하는 마음 등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네 마음은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 죽이려는 생각, 뺏으려는 생각으로, 그대의 마음은 언제나 달리고 있다.” 비록 앙굴리말라는 발걸음은 멈추었지만 마음은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붓다는 발걸음은 비록 달리고 있지만 마음은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쉬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마음이 쉬어야 육신이 쉴 수 있다. 마음이 분노와 증오로 타오르고 있을 때 잠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보내기도 한다.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의 칼날 앞에서도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은 큰 바위와 같이 동요함이 없다. 마음에 어떠한 동요도 없는 사람을 여래라고 부르는 것이다. 조용한 곳에 앉아서도 마음을 정지시키기란 힘든 일이다. 그런데 외부의 어떤 조건에도,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는 상황에서도 마음의 동요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다. 여하튼 이 경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은 여러가지 욕망으로 분주하다는 것이다. 욕망의 정지야말로 진정한 마음의 휴식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휴식은 일상적인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심신을 편안하게 쉬는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에 의하면 심신을 피로하게 만드는 욕망을 제거하지 않는 한 결코 평화는 없다. 먼 곳으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떠나기 전에 지금 이 자리에서 욕망의 뿌리를 뽑아버림으로써 진정한 평화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동국대 불교학과(경주)
200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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