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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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 스님
어린이법회의 선구자

“수행자는 눈을 뜨고 있을 때나 감고 있을 때나 차이가 없어. 앉으나 서나 누워있을 때나 항상 한마음으로 깨어 있어야 해.”
서울 삼각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고찰 진관사 주지 진관( ) 스님은 “스님은 수행에 열심히 매진해야 하고, 재가불자는 가정을 잘 지켜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자기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때 사회가 밝아지고 더불어 사는 불국토를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스님은 80이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행자의 본분에 충실한 삶을 살고 계신다.
새벽 2시에 일어나 다른 스님보다 일찍 법당에 올라와 아침 예불을 준비하고 108배, 참선, 독경 등 수행을 꾸준히 하신다. 상좌 스님들이 이제 나이도 많이 드셨으니 좀 쉬시라고 하면 아직도 수행자가 어떻게 편안함을 찾느냐며 호통을 치실 정도이니 스님이 얼마나 철저한 수행자인지 알수 있다.
1927년 서울에서 태어난 진관 스님은 1945년 오대산 월정사 지장암에서 인홍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탄허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했고 월정사 강원에서 탄허 스님에게 사사를 받았다.
1960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한 스님은 수덕사 견성암, 지리산 국사암, 문경 대승사 윤필암, 예산 보덕사 등에서 정진했다.
스님은 진관사와의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1973년 주지로 부임, 현재까지 30년 이상 불사를 해오고 있다. 진관사는 고려 현종이 왕위에 오르기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 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다.
“前 전등사 조실 서운 스님이 하루는 나를 보고 네가 고려시대때 진관사를 창건한 진관 스님의 화신이라며 진관사에 가서 청정도량을 만들라고 하셨어. 생각해 보니 한문은 다르지만 한글로는 법명도 같고 해서 내 일이려니 하고 도량을 가꾸기 시작했어.”
진관 스님은 광우 스님 등과 함께 전국비구니회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1985년부터 부회장 소임을 맡아 비구니회관 건립 서원을 세우고 전국을 돌며 모연을 했다. 당시만 해도 비구니 스님의 위상이 지금과 같지 않았고 재정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스님은 비구니 큰스님들을 만나 그 뜻을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해 부지를 마련했고 건물이 완공되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어린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진관 스님은 어린이법회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1880년 초부터 불교의 미래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달려있다는 생각으로 어린이법회를 열고 지금까지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사중에서 된장, 청국장 등을 팔아 어린이 법회에 기부해 재정적으로 안정시켰고 풍물, 다도 등을 가르치면서 불교적 소양을 심어 주고 있다. 지금까지 어린이회를 졸업한 학생만도 수천명에 달한다. 1996년에는 행신동에 코끼리 유치원을 설립해 지금까지 인재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진관 스님의 상좌인 진관사 총무 수경 스님은 “큰 스님은 거울과 같은 스님”이라며 “거울을 보면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수 있듯이 스님을 보면 내가 어떤 수행자인지를 쉽게 알수 있을 정도로 경책이 된다”고 말했다.
김두식 기자

본지 466호 4면 ‘한국의 비구니 스님-성연 스님’기사에서 정묵 스님은 ‘상좌’가 아닌 ‘손상좌’로 바로잡습니다.
200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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