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3 (음)
> 종합 > 기사보기
분노를 안고 사는 귀신
우리는 잘 의식하고 있지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에서 분노가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다양한 이유로 화를 낸다. 자동차 운전을 들어보자. 자동차로 출퇴근 할 때마다 화를 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가뜩이나 좁은 도로에 차를 주차시켜 힘겹게 비켜가야 할 때,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어 막 출발하려고 하는 순간 뒷차가 빨리 가라고 요란한 경적 소리를 낼 때, 옆 차선에서 달리던 차가 신호도 보내지 않고 갑자기 앞에 끼어들 때 입에서 욕설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다.
사실 화를 내보았자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를 분노케 하였던 차들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어도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해칠 뿐이다. 출퇴근 할 때마다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어떻게 하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법을 준수하지 아니하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나의 마음을 훈련시키는 스승으로 생각하면 분노의 불꽃은 이전과 달리 오래 가지 않는다. 나 자신은 비록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할 지라도 어떤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 있으면 신호등을 제때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분노가 일어날 때마다 분노를 일으킨 사람에게 감사한다면 분노는 곧 사라지고 만다.
다음에 소개하는 경전도 분노를 일으키는 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상윳타 니카야의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붓다가 사위성에 머무실 때 분노와 관련하여 말씀한 것이다.
“옛날에 흉측하게 생긴 야차가 신들의 왕인 제석천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것을 본 33천의 신들은 이 야차에게 손가락질하며 욕하였다.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못생긴 야차가 천신들의 왕인 제석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33천의 신들이 야차를 상대로 욕을 하면 할수록 야차는 점점 더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야차는 대체로 경전에서 살생을 일삼는 사악한 귀신으로 등장하고 있다. 반면에 제석천은 불법을 믿고 선행을 하며 거대한 힘을 가진 신이다. 사악한 야차가 33천의 신들이 모시고 있는 제석천의 자리에 앉아 있으니 신들이 야차를 욕한 것이다. 그런데 거친 말을 하면 할 수록 그만큼 야차는 더 멋지게 되었으니 이것은 야차를 도운 셈이 된 것이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욕하면 오히려 그 사람을 돕는 것임을 이 이야기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욕설을 받은 야차가 더 아름답게 되자 33천의 신들은 제석천을 찾아가 일어난 일을 보고했다. 제석천은 곧 분노를 먹고 사는 야차를 찾아갔다. 제석천은 야차에게 다가가서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무릎을 땅바닥에 끓고 손을 합장하여 존경의 예를 올렸다. 그리고 나서 제석천은 야차에게 공손하게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사랑하는 이여! 저는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라고 합니다.” 제석천이 이렇게 공손하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야차는 점점 더 흉측해 지고 마침내 그 자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제석천은 이것을 지켜본 33천의 신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마음은 분노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 나는 결코 분노를 오래 머물게 하지 않는다. 분노는 결코 끈질기게 오래 머물지 않는다. 나는 화가 날 때 거친 욕을 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덕을 자랑하지 않는다.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 자신을 잘 제어한다.”
상대방이 욕할 때 반사적인 욕으로 대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석천은 마음을 잘 단속하고 있는 사람에겐 분노는 일어날 기회를 찾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제석천이 분노에 대응하는 방식은 보통 우리가 하는 것과 판이하다. 자신을 무시하거나 욕하는 자에게 친절하고 공손하게 대응하는 것이 진정으로 분노를 이기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알고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지 윽박지르거나 맞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분노가 일어나면 오래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도 새겨들어야 하겠다. 사람이 어울려 살다보면 화가 나지 않기란 힘들다. 그렇지만 일어난 화를 붙잡아두면 홧병에 걸리고 자신을 해치게 되고 만다. 붓다는 화와 관련하여 세 종류의 사람을 들고 있다. 첫째 부류의 사람은 돌에 분노를 새기는 사람이고 둘째는 분노를 모레에 새기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분노를 물에 새기는 사람으로 분류하였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분노를 돌에 새긴 사람은 되지 않아야 하겠다.
동국대 불교학과(경주)
2004-03-24
 
 
   
   
2024. 5.2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