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라성에 있는 변우(遍友)라고 하는 동자의 스승(童子師)을 찾아가서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도를 닦는 법을 물으라고 하는 천주광녀(天主光女)의 가르침을 받고, 선재동자는 천궁에서 내려와 가비라성을 찾아갔다. 변우가 있는 곳에 나아가 그에게 예배하고 나서 법을 청하자, 변우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여기에 한 동자가 있으니 이름이 선지중예(善知衆藝)이다. 보살의 문자에 관한 지식(菩薩字智)을 배웠으니, 그대가 물으면 말하여 줄 것이다”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변우는 자신의 법문을 하지 않고 법을 청하는 선재동자에게 곧바로 ‘선지중예’라고 하는 동자를 찾아가라고 지시한다. 변우동자사는 이와 같이 특이한 모습을 보이는 선지식이다. 변우라고 하는 명칭은 두루 모든 중생에 대해서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 때문인데, 변우는 모든 중생의 스승이 되어 그들을 올바르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우는 순수한 구도자인 동자의 스승(童子師)으로서 훌륭한 선지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중생의 훌륭한 친구가 되고, 좋은 기술과 지식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되어 제자들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유익한 여러가지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변우동자사가 일러준대로 선지중예동자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자, 선지중예동자는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그 이름은 ‘모든 예술을 잘 앎(善知衆藝)’이다. 나는 항상 이 자모(字母)를 독송한다. 아(a, 阿)자 음(音)을 소리낼 때는 반야바라밀다문에 들어가나니 그 이름은 ‘보살의 위력(威力)으로 차별이 없는 경계에 들어감’이다. 다(ta, 多)자 음(音)을 소리낼 때는 반야바라밀다문에 들어가니 그 이름은 ‘그지없는 차별한 문’이다. … 라(ra, 陀)자 음(音)을 소리낼 때는 반야바라밀다문에 들어가나니 그 이름은 ‘모든 법륜의 차별한 광’이다. 선남자여, 내가 이런 자모를 부를 때에 이 사십이(四十二) 반야바라밀다문을 으뜸으로 삼아 한량없고 수없는 반야바라밀다문에 들어간다.”
지금 선지중예동자가 설하고 있는 선지중예해탈의 법문은 알고 이해해야 할 세간의 온갖 재능과 기술 중에서 특히 문자(文字)에 관한 것이다. 그는 지혜를 발휘하여 세속의 언어와 문자를 이용해서 세속을 벗어난 출세간의 반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언어와 문자가 비록 허망(空)하다고는 하지만, 이를 지혜롭게 활용하면 얼마던지 진실한 경계를 나타낼 수도 있고 인간생활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세속의 여러가지 재능과 기술을 통달하여 중생들을 이롭게 하여 보살의 깨달음의 경계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이 밖에도 무수하게 있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선지중예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모든 예술을 잘 아는 보살의 해탈을 알 뿐이다. 저 보살마하살들이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교묘한 법을 지혜로 통달하여 저 언덕에 이르며, 다른 지방의 이상한 예술을 모두 종합하여 다 알고, 글과 산수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의학과 술법으로 여러가지 병을 잘 치료하며, 어떤 중생들이 귀신들리었거나 원수에게 저주를 받았거나 나쁜 별의 변괴를 입었거나 송장에게 달라붙는 악귀에 쫓기거나 간질·조갈 따위의 병에 걸린 것을 모두 구원하여 쾌차하게 하는 일과 또한 금·옥·진주·보패·산호·유리·마니 등의 보배가 나는 처소와 종류가 같지 않음과 값이 얼마나 가는지를 잘 분별하여 알며, 마을이나 시골이나 성시나 크고 작은 도시들과 궁전·공원·바위·샘물·숲·진펄 등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데를 보살이 모두 다 지방을 따라 거두어 보호하는 일과 또한 천문·지리와 사람의 상(相)의 길흉과 새·짐승의 음성을 잘 관찰하며, 구름·안개의 기후로 시절의 흉년·풍년과 국토의 태평하고 나쁜 것을 짐작하는 일과 이러한 세간의 모든 기술을 모두 잘 알아 근원까지 통달하는 일과, 또한 세간에서 뛰어나는 법을 분별하며, 이름은 바로 알고 이치를 해석하며 본체와 모양을 관찰하고 따라 수행하며, 지혜로 속속들이 들어가 의심도 없고 걸림도 없고 어리석지도 않고 고집스럽지도 않고 근심과 침울함도 없이 현재에 증득하지 못함이 없는 일들이야 내가 어떻게 알며 그 공덕의 행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여기에서 설하고 있는 내용은 모두 세속적인 재능과 기술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세속적인 여러가지 일들이 보살이 통달해야 할 것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깨달음의 세계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세속의 여러가지 중생의 삶과 관련되어 그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그들에게 여러가지로 이로움을 줌으로 해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보살의 지혜 광명의 묘한 작용은 이렇게 작용해서 중생세계에 구체적인 여래출현의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